생각의 융합(2)

김경집 승인 2024.01.21 12:36 의견 0


네덜란드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 중 하나는 축구다. 전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축구에서 네덜란드는 자주 강력한 우승 후보로 인상적인 축구,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나라이다. 거스 히딩크를 통해 우리는 네덜란드 축구와 더 친근해졌다. 지금 돌아봐도 감격적인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만들어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히딩크 때문에 우리는 네덜란드를 쉽게 기억한다. 네덜란드는 적은 인구인데, 어떻게 강력한 축구팀을 보유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가 반도체를 생산하는 세계적인 2개 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에 필요한 핵심장비의 해외 의존도는 아직 높다. 그 중에 하나가 네덜란드 국적의 ASML이라는 다국적 기업이다. 반도체생산의 핵심 장비 중 극자외선(EUV) 노광장치를 독점하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ASML은 네덜란드 필립스와 필립스에서 분사된 반도체 제조장비 기업 ASMI의 합작회사로 1984년 설립되었다. 네덜란드에 유명한 다국적 기업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는 Neider(낮은)+Land(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국토가 해수면 보다도 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풍차를 기억한다. 네덜란드의 토지는 척박했고 자연환경은 열악해서 농사짓기도 힘들었다. 네덜란드 역사를 보면 이들도 힘들게 살았다. 에스파냐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에스파냐에서 종교재판이 진행되면서 에스파냐에서 살고있는 유대인과 비카톨릭교도들이 네덜란드로 이주해 온다. 이때 이주해온, 에스파냐를 떠났던 사람들 중에는 자본과 지식을 많이 가진 유대인이 많았다.

한편 영국과 에스파냐와의 싸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영국은 배를 건조하기보다는 대포제작에 몰두했고, 에스파냐와의 제해권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에 네덜란드는 꾸준히 바다로 진출해서 살길을 찾았다. 에스파냐와 포루투칼의 힘이 조금 약해질 때는 기회를 잡고 인도와 중국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해서 무역을 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네덜란드 인구는 얼마 안되지만 세계를 주름잡던 시간대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종교적 자유는 종교에 배타적인 에스파냐와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해양국가로 부상하면서 여러 도시들이 자치권을 가지고 모직물 공업과 중계무역을 이어갔다. 자치권을 많이 가진 상업도시들로 구성된 네덜란드는 ‘자유’가 있었다. 자유의 가치를 상징하는 ‘오렌지’가 네덜란드의 색깔이 되었다.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가치를 다른 곳보다 훨씬 먼저,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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