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는 사회’? 개념을 만드는 새로운 인재가 필요!!!

'기술투자'만 하지말고 '공간투자'를 해야한다

전인수(KGPN 이사장) 승인 2024.03.23 13:51 | 최종 수정 2024.04.01 09:20 의견 0


고도성장기 우리나라 기업의 성장을 추동해온 에너지가 인재라는 것에 대한 이견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기반의 지식기술로 ‘생각 없는 사회’가 된 동시대에도 우리기업의 성장을 추동하는 힘은 아마도 인재일 것이다. 하지만 바뀐 시대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인재상을 정립하지 못하고 기존의 인재상을 고수한다면 아마도 그 추동력은 없어질 것이다. 추동은 고사하고 人災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재상을 생각하기로 한다.

1. 생각 없는 사회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는 근대(modern era)를 ‘고통 없는 사회’라고 한다. 기술개발이 혁신적으로 이루어져 육체노동, 질병, 의식주 등으로 인한 인간고통이 없어진 사회가 근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통이 있어야 행복을 알고 고통을 통해 인간존재로서 가치도 알게 된다는, 고통의 미학을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고통이 사라진 근대에는 점점 더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고 그는 경고한다.

한병철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기반의 지식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2010년 이후 동시대는 어떤 사회일까? 그의 논리를 연장하면 ‘생각 없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판단하고 생각하는 고통을 없애주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동시대에 대체 인재란 어떤 조건을 갖춘 이를 말할까?

2. 새로운 인재상

시대에 맞지 않는 인재는 人材가 아니라 人災가 될 수 있다. 어떤 이가 人災가 될까? 시대에 뒤떨어진 능력을 뛰어나게 가진 이가 바로 人災가 될 수 있다. 대체로 과거 고도 성장기에 탁월한 성과를 보인 이가 기득권의 위치에 있는 경우, 人災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자기 경험과 지식에 집착하여 변화와 혁신을 그르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은 대강 이렇게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타인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하고, 배려해야 하며, 소통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등 여러 조건이 얘기된다. 하지만 바람직한 인재상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창의성이다. 창의성 있는 교육, 창의성 있는 인재 등등 어디를 가든 창의성을 말한다.

창의성, 좋다. 얼마든지 말하라. 하지만 창의성이 에너지가 되려면 동시대에 맞는 像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창의성은 대체로 문제를 새로운 눈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내놓고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눈과 문제의 발견 능력은 어디서 올까?

필자는 딱 한 마디만 한다. 변화하는 시대흐름을 읽어내고 이를 비즈니스개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개념설계(concept design) 능력을 갖춘 이를 인재라 정의한다. 과거 우리의 고도 성장기는 선진국이 만든 개념을 모방하면 되었다. 빨리 모방하여 이를 구체화시키고 더 효율적으로 실현하는 이가 인재였다. 한마디로 개념모방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이가 인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외국 유학경험을 우대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여건은 맨 앞자리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개념설계 능력을 갖춘 이를 이 시대는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념설계는 무엇일까?

3. 개념설계

개념설계를 논의할 때 늘 인용하는 아포리즘이 있다. “내가 쓰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다.” 이는 현대철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 교수의 말이다. 이 말은 새로운 개념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개념은 프레임이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라 해도 되는데 엄청난 힘을 갖는다. 그 무엇보다 인식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힘을 갖는 것이다.

아래의 첫번째 이미지는 여의도에 들어선 더현대의 사운즈포레스트이고 다음 이미지는 헬리녹스라는 야외용품브랜드로 유명한 동아알루미늄의 인천 공장이다. 사운즈포레스트는 더현대를 백화점이 아니라 고객과 공감을 나누는 장소로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고 동아알루미늄은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제품을 작품화하는 장소로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은 중요하지만 모든 개념이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잘 설계된 개념만이 힘을 갖는다. 잘 설계됨은 어떻게 판단할까? 설계(design)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그리다, 그리면서 생각한다.”는 의미가 있고, 탈기호(de+sign)가 두 번째 의미다. 첫 번째는 시대흐름을 담아내는 시도를 말하고 두 번째는 기존의 기호(개념)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기존의 것을 벗어나 시대흐름을 구체화시키는 시도가 설계라는 것이다. 단절해야하기 때문에 큰 고통이 따르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 고통이 따르고 용기가 필요한 개념이 힘이 세다는 것이다.

4. 개념설계 능력은 어디서 올까?

상상력이 바로 개념설계 능력의 뿌리다. 상상학을 창시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이 오늘의 인류 발전을 있게 한 힘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비행기는 비행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열심히 연구하여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새처럼 날고자 하는 상상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바슐라르는 이성 대 상상력을 대비시켜 상상력 우위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상상력은 또 다른 이성이다. 이성은 합리성과 상상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합리성은 보이는 것이나 현재중심의 이성이고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과 미래중심의 이성이다. 생텍쥐페리(Saint-Exupery, 1900~1944)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림이다. 어른들은 모자라 하고 어린이는 코끼리 먹은 보아뱀이라 한다. 그래서 무서워한다. 겉만 보고 모자가 뭐가 무섭냐고 하는 것이 합리성이라면 어린이의 눈에 비친 보아뱀은 상상력인 것이다.

상상력은 겉만 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접힌 부분을 찾아낸다. 우리사회는 점점 합리성을 추종한다. 합리성이 낮이라면 상상력은 밤이고, 합리성과 상상력은 동전의 양면이지 따로 노는 것이 아닌데도 합리성은 강조하면서 상상력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합리성을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부재한 사회가 추구하는 합리성은 현재중심이거나 심지어 과거중심이라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잊혀져가는 상상력의 복원이 새로운 인재상에 요구되는 것이다.

이렇게 개념설계 능력을 상상력으로 국한하면 이런 반론이 나올 것이다. 상상력이 조직의 에너지가 되려면 그것만으로 될까? 해당 업을 잘 알아야 하고, 자신이 가진 자원도 알아야 하며, 함께 갈 사람들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여러 능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것이 상상력이다.

5. 어떻게 상상력을 키울 것인가?

상상력이 개념설계능력으로 중요함을 인정하더라고 이런 능력을 갖는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라는 큰 과제가 새로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상상력은 교육을 통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상상력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자유로운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상대의 말을 존중하는 사회, 왜 상대가 그런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지 물어보는 사회, 자기만의 색깔인 단독성을 중히 여기는 사회 등 기본적으로 자유를 공존의 코드로 생각하는 사회다.

다 좋은 얘기지만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드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자유로움이 가능할까?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졌기 때문에 더더구나 상상력을 갖춘 인재가 육성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어떻게? 그 답은 공간혁신(space innovation)이다.

인간은 공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 지에 따라 그 속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자극될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든다. 아래 사진은 경의선 철로에 새로 조성된 연남동의 밤 풍경이다. 이런 공원에 누워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과 스마트폰에 눈 박고 탐색만 하는 사람 간에 분명 상상력의 차이는 날 것이다.

상상력을 키우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공간혁신임을 다시 강조한다. 교육이라는 제도로 상상력을 키우려는 순간 상상력은 사라진다. 스스로 상상력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삶의 공간과 노는 공간, 일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나 기업의 자원은 기술혁신 못지않게 공간혁신에 투입돼야 한다. 그게 바로 생각 없는 사회, 저성장시대를 돌파하는 길이다. 굳이 구글이나 아마존의 오피스 사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왜 정글컨셉과 베이뷰캠퍼스컨셉으로 사무실공간을 혁신하는지를 생각해보면 필자의 주장을 어느 정도 짐작할 것이다.

6. 요약

자칫하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의 추동력이었던 인재가 人災가 될 수 있어 바람직한 인재상을 생각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강조되는 인재상은 창의적 인재다. 창의적 인재는 시대마다 다를 수 있는데 동시대의 특징인 ‘생각 없는 사회’에서 人材는 개념설계능력을 갖춘 이를 말한다. 이 능력은 인공지능기반의 지식기술이 넘보기 어려운데, 이유는 상상력은 밤이고 접힌 부분이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합리성은 이성의 양면이라 상상력을 갖고 합리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이가 바로 바람직한 인재다. 새로운 인재상의 핵심인 상상력은 교육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회나 회사분위기에서 스스로 길러지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공간혁신으로 조성될 수 있어 기술투자 못지않게 공간투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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