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보도한 외신기자 테일러

미국 뉴스통신사 UPA 서울 특파원이던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입수해 기사를 작성한 뒤 경찰의 눈을 피해 전 세계에 타전했다. 그가 살던 서양식 가옥 딜쿠샤에는 그의 활동상과 1920년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이희용 승인 2024.12.03 08:00 의견 0
앨버트 테일러와 그가 살았던 집 ‘딜쿠샤’

서울 한양도성의 서대문(돈의문)이 있던 강북삼성병원 앞에서 인왕산 쪽으로 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직터널을 지나자마자 빼곡히 들어찬 다가구주택 사이로 오래된 서양식 벽돌집이 나타난다. 이 일대가 행촌동인데, 바로 앞에 수령 500년에 가까운 큰 은행나무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집의 별칭은 ‘딜쿠샤(DILKUSHA)’. ‘기쁜 마음’이란 뜻의 페르시아어다. 영국인들이 인도 북부에 지은 별장 이름에서 따왔다. 화강석 위에 프랑스식으로 벽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을 번갈아 쌓아올렸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연면적은 624㎡(약 189평)에 이른다. 1923년 지어져 건축사적인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3·1 운동을 해외로 알린 외국 기자가 살던 유적지여서 2017년 8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집의 주인이던 앨버트 테일러는 1896년 21세의 나이로 아버지 조지 테일러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평안북도 운산금광 감독관으로 일하다가 1908년 부친이 사망한 뒤에도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은 채 금광업과 무역업을 하면서 뉴스통신사 UPI의 전신인 UPA의 서울 특파원을 겸했다.

테일러의 아내 메리 테일러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날 무렵 남대문 밖 세브란스병원(현재 연세대세브란스빌딩 자리)에서 아들 브루스를 출산했다. 간호사가 아들 요람에 숨겨놓은 기미독립선언문을 발견하자 기사를 작성한 뒤 동생 윌리엄을 시켜 기사와 선언문을 일본 도쿄로 몰래 반출해 전 세계에 타전하게 했다.

테일러는 그해 4월 경기도 화성에서 일어난 제암리 학살사건도 취재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고, 스코필드·언더우드와 함께 조선 총독을 찾아가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에 항의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에 의해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가 이듬해 미국으로 추방됐다. 광복 직후 미군정청 고문 자격으로 다시 방한하기도 했다. 1948년 미국에서 숨진 뒤 그의 뜻에 따라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묻혔다.

메리 테일러는 1920년 초 서울성곽을 산책하다가 큰 은행나무가 있는 평평하고 높은 언덕을 발견하고 "이곳에 집을 지어 살면 좋겠다"며 남편을 졸랐다고 한다. 그곳은 권율 장군의 집터였다. 나중에 그 땅이 매물로 나오자 당시 10만 엔, 현재 가치로 10억 원을 주고 사들여 집을 짓고 1942년 추방될 때까지 살았다.

테일러가 떠난 뒤 딜쿠샤는 한동안 비어 있다가 6·25 직후 피난민들이 무단 점유하고 살았다. 1963년 국유화된 뒤에도 십여 가구가 칸막이로 쪽방을 만들어 생활해왔다. 주민 사이에서 ‘미국인 기자의 집’이었다고 전해 내려오자 어떤 학자는 인근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이 살았다는 이유로 대한매일신보 사옥으로 잘못 추정하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잊힌 딜쿠샤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2006년의 일이다. 이곳에서 20년간 살다가 미국으로 떠난 아들 브루스가 옛날 기억과 어머니의 회고록 ‘호박 목걸이’에 적힌 기록을 더듬어 이 집을 찾아 나서면서 숨겨진 내력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주민들을 이전시키고 복원 공사를 벌여 기념관으로 꾸몄다. 손녀 제니퍼 테일러는 2016년 방한해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한 뒤 딜쿠샤 관련 유물 57건 169점을 기증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직원들도 미국을 방문해 관련 유물과 유품 수백 점을 추가로 넘겨받았다.

2021년 3월 시민에게 공개된 딜쿠샤에는 뉴욕타임스 등에 실린 테일러의 3·1운동 관련 기사, 고종 국장 행렬을 비롯해 테일러가 찍은 사진, 메리가 그린 풍경화와 초상화, 테일러 가족이 쓰던 각종 생활용품,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제작 복원한 병풍과 가구, 기록영상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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