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 역사는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처음 시작도 그렇지만 과거를 이어 오늘에 이르게 하는 뛰어난 여러 학자들의 노력과 발전의지는 놀라움을 넘어 존경심을 불러오기까지 합니다.
우리 갑상선학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현재의 갑상선 수술을 완성한 Theodor Kocher 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을 정확하게 보고 기술했던 William Halsted는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발명한 수술용 장갑이라든지, meticulous, 즉 정교한 수술이라고 불리는 방식을 원칙으로 설립한 공은 누구라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하자면, 그는 의학교육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외과 수련 과정의 원칙을 세웠고, 이 개념은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의 수련 정책은 1889년, Johns Hopkins 병원이 설립되면서 수립되었습니다.
이 병원의 시스템은 학생 교육보다는 의사 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에 목적을 두고 있었지요.
이때 Halsted는 독일의 수련제도를 모방한 정책을 만듭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독일과 확연히 다른 것이어서, 같은 도제제도의 형식이지만 오로지 교수를 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하던 ‘조수’라는 존재를 하나의 개별적인 피교육자의 존재로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지금도 독일이나 독일의 형식을 따르는 일본에서는 여전히 이 ‘조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Halsted의 교육 목적은 단순히 뛰어난 외과의사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교육은 아주 엄격하고, 요즘 사람들의 개념으로 보면 아주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선발하는 사람들은 24시간, 주 7일 병원에서 근무해야 하고 1년 365일 늘 한결같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련기간은 따로 정해진 것이 없었습니다.
수련을 마칠 수준이 되면, 즉 독립적인 외과의사가 될 만큼의 실력이 갖추어 지면 이를 Halsted가 결정하게 되는데, 그의 결정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옛날 영화에서 보던 ‘하산(下山)’이 떠오르지요?
“이제 하산하도록 하라.” 하는 스승님의 명령이 있기까지는 물 긷고 밥 하고 청소하며 산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의 수련제도는 피라미드 방식이어서, 수많은 1년차가 출발해도 결국 살아남아 수련을 마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인간 되기 쉽지 않다’는 수련과정인 것입니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내 부친이 장기려 박사님 밑에서 수련하며 겪었을 생활과 애환입니다.
당시 너무 어렸던 나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집에 오시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몇 달에 한번 정도
“자네 오늘은 집에 다녀와.”
하고 차비를 좀 주시는 것이 유일한 pay 였고, 유일한 off 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옛날 surgeon들은 우리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난의 세월을 견디고서야 겨우 ‘하산’이란 것을 할 수 있었다는 거죠.
지금 미국에서는 외과 레지던트 과정이 5년입니다. 과거 4년 과정에서 한해가 더 늘었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그리고 주 80시간 근무제도가 정착되면서 더더욱 수련기간이 연장되어야 한다는 필연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수련기간이 3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한국은 학생들이 너무 머리가 좋기 때문에 습득이 미국보다 빨라서?
혹은 한국 외과는 배울 것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이런 기이한 현상의 이유는,
“외과가 인기가 없어서.” 라고 합니다.
당시 외과학회를 맡고 있던 회장이며 이사장이 이렇게 수련기간을 줄이면 지원자가 생길 것이라는 아주 ‘순진무구한’ 생각을 하고 이리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길길이 뛰며 반대 했었습니다. (저도 당연히 반대파에 들어가죠.)
하지만 그 다음해에 외과 지원자가 많아지는 현상을 보고 이 정책의 입안자들은 마치 무슨 대단한 개혁이라도 한 것인 양 득이만만 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순진함은 곧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는데, 2-3년이 지나지 않아 서울의 이름난 몇몇 병원 외에는 외과 전공의가 다 씨가 말랐습니다.
결국 부실한 외과 교육과정으로 인해 키워 내보내는 우리 교수들도 불안하고, 하산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아는 전공의들도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펠로우 수련을 더 하던지, 아니면 이도저도 다 접고 외과의사가 아닌 삶을 살기로 결정을 하게 되는 일로 이어지게 되었죠.
이들은 외과 수련을 마치고 나갔음에도 성형도 하고 피부도 하고 가정의도 합니다. 그리고 입원전담의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고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외과를 선택한 사람들은 요즘 떠들어대는 대로 낙수효과의 마지막 단계로 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적어도 사람을 살리겠다고, 그런 학문을 배우겠다고 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긍지를 가지고, 그리고 사명감으로 무장했던 젊은이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다니.
요즘 다들 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니, 아마도 조만간 뭔가 많이 바뀌게 되겠지요.
그런데…. 겨우 ‘낙수 의사’에 불과한 전공을 가진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안 그래도 힘든데 이 외과를 하겠다고 올 사람은 과연 남아 날까요?
정책을 정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한번 잘못 들어선 길은 되돌아 나오려면 몇배나 더 힘든 과정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지금 우리 외과가 겪는 일을 보면 어디서부터 고쳐써야 할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이런 혼란을 자초한 사람들은 지금 죄다, 은퇴를 했거나, 다른 일을 하느라 외과를 떠났습니다. 책임을 지우기도 힘든 것이죠.
이렇게….. 지금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우리 외과는 진정 앞날이 불투명하고 암울합니다.
언젠가 혜안을 가진 William Halsted나 장기려 박사님 같은 엄한 스승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요.
결국 ‘인간을 만들어’ 하산을 시켜야 할 테니까.
그게 바로 우리 외과에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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