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22. 3. 26. 중앙선데이 칼럼에 올린 글을 다시 올립니다(*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8455).
역대 최저 득표수 차이로 제20대 대통령이 선출됐다. 마지막까지 공방이 치열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번 대선은 1대0 이 아니라 0대-1로 승부가 난 것 같다. 자기편 득점보다는 상대편 자책골에 의해 승패가 갈렸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선거의 본질이 한 표라도 더 받아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라면 이번 선거는 역설적이게도 그 본질에 충실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말처럼 현재는 크게 소리치는 반면 미래는 조용히 귀에 소곤거렸고, 현재에 더 충실한 쪽이 이겼다. 이제 다음 5년 동안 한국호를 이끌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됐다.
새 정부 출범 앞두고 과제 산적
출산율, 기후변화, 에너지안보 등
중장기 이슈 국가전략 마련할 필요
정권 임기 넘은 미래 볼 수 있어야 |
하지만 여전히 답이 필요한 질문은 남아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우리 사회의 암울한 미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합계출산율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보다 낮은 나라로 2021년에는 0.81명에 불과했다.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사회기간망 유지, 디지털 전환 선도, 팬데믹 대응 등은 장기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되는 것인데 어느 것 하나 간단하거나 완전한 해법이 없다.
과연 우리나라엔 국가전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나? 21세기 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를 누가 하고 있을까?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국가전략은 누가 만들고 있는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도 이런 중장기 전략 활동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도할 정도로 많았다. 임기 말에 발표되어 아무도 읽지 않았지만 결국은 하나씩 실현됐던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 의욕적으로 만들었지만 이제는 아무런 흔적이 없는 이명박 정부의 미래기획위원회, 박근혜 정부의 미래수석 등 작은 성공과 큰 실패를 경험하게 한 사례는 매우 많다.
산적한 과제를 눈앞에 둔 차기 정부도 다양한 중장기 전략 관련 여러 노력을 하겠지만 현재 상태라면 의미 있는 여러 난관에 부닥칠 것이다. 야당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정부조직 체계와 운영방식과의 충돌도 피하기가 어렵다. 특히 과거 실패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그냥 눈감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현안 처리에 바쁜 부처, 한정된 자원, 부족한 미래 역량을 감안할 때, 먼저 대통령 권한으로도 실행 가능한 쉬운 것부터 추진하는 것이 좋다.
첫째, 부처 장관으로부터 정책에 대한 보고를 받을 때마다 “그 이슈는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하고 질문하시라. 이런 질문을 3번만 받는다면 그 장관은 당장 부처 내에 중장기 이슈를 다루는 조직이나 사업을 만들게 될 것이다.
둘째, 대통령은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보좌진, 장관들과 함께 미래피정(foresight retreat)을 가시라. 피정이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 수련을 말한다. 대통령이 엄청나게 바쁜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단 하루만이라도 미래이슈만을 오롯이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등 공무원 교육과정에 미래전략 과정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미 유사한 과정이 있지만,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더 늘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싱가포르, 캐나다, 영국 정부 등에서 공직자에게 제공하는 미래전략 교육과정이 매우 부러웠다.
넷째, 정부 내 누군가에게 각 정책을 미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임무를 부여하라. 담당자는 정부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개별적인 미래전략 활동을 연계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OECD에는 사무총장실 직속으로 OECD 활동의 미래지향성을 점검하는 조직(Strategic Foresight Counsellor)이 있다. 핀란드 총리실 산하에는 미래전략코디네이터(Government Foresight Coordinator)가 있다. 싱가포르 총리실 산하 전략그룹(Strategy Group)은 아주 소수이지만 부처가 수행하는 미래전략 사업 등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팀을 갖고 있다.
다섯째, 국책연구원의 미래전략연구 기능을 강화한다. 정책연구는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바람직한 미래상이 있어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가능하면 집권 1년 차에 국가미래전략보고서를 발간하는 것도 정책의 미래지향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핀란드는 새로운 총리가 취임할 때마다 정부미래전략보고서(Government Foresight Report)를 발간하고 의회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는다. 공개된 보고서에 대해 각 부처는 실행계획을 담은 답변서를 쓰도록 돼 있다.
이제 곧 새 대통령을 맞아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부 환경 변화의 속도, 불확실성 심화로 인한 그 파급 규모가 우리의 현재 상상을 뛰어 넘을 가능성이 있다. 승용차를 빠르게 몰고 싶다면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상향등을 켜야 한다. 즉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미래보다 더 먼 미래, 정권의 임기를 넘어서는 시간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정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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