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들어줄 미래를 묻습니다

박병원 승인 2024.04.02 08:00 의견 0

선데이 칼럼

박병원(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22. 2. 12. 중앙선데이 칼럼에 올린 글을 다시 올립니다(*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7622.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안 남았다. 누가 당선되든지 간에 그 선택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20년 이상 우리 미래를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내외적으로 처한 환경이 예사롭지 않다. 기후변화, 패권경쟁, 기술발전 등 환경 변화의 불확실성은 날로 커지지만 현재의 국가발전방식은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기회도 커지지만 불안과 갈등도 증폭될 수 있다. 매 선택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극과 극으로 갈라질 것이다.

모두가 이번 대통령 선거는 과거의 경우와 많이 다른 것 같다고 한다. 후보자 자질과 가족 문제에 더해 역대급 네거티브 전략은 논외로 하더라도 각 후보자가 제시하는 우리나라 미래모습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미래비전이 없거나 막연하거나 파편적이거나 황당하거나 아니면 이들의 조합일 것이다.

정치인은 눈앞 선거 중요시해
임기 내 성과 내는 단기 문제 집중
현실적 유권자 이익도 중요하지만

1970년 후반에 워런 버핏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정치인에게 ‘다음 선거’와 ‘미래 세대’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 뻔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눈앞의 다음 선거다. 보통 이런 현상을 단기주의, 정치적 근시안, 정책적 단기주의, 현재주의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하지만 정치인 또는 고위 의사결정자 개인이 모든 비난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만의 문제라면 당사자 하나만 바꾸면 문제가 너무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으며 관찰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는 가능성은 이론적으로 0(제로)이다. 미래에는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영향도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은 미래의 기본 특징이며, 관련 정보를 많이 안다고 해서 불확실성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미래연구는 정확한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어떻게 인지하고 다루는가의 문제이다.

둘째,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미래에 적절한 관심을 가지고 사전에 투자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정치권은 미래 위험에 대한 대비보다 현재에 희망을 주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당장 해결해야 하지만 쉬운 해결 방안이 없거나, 유권자의 시급한 요구도 없는 사안에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할 유인 구조는 약하다. 정말 필요한 정책들이라도 현 세대의 지지를 잃어서는 집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21대 국회 초선의원 수가 절반을 넘는 151명으로 2분의 1 이상이 물갈이됐다. 한마디로 극한직업이다. 미래 위험을 예방했다고 각광받는 일은 극히 드물고 그 공치사 또한 다른 정치인이 누릴 가능성이 많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나의 이익을 지켜주지 않은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주어야 할 이유가 없다. 정치인은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재 나의 이익이 박탈되는 정책 변경이라면 반발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다. 현재 이익은 확실하지만 불확실성 때문에 미래 이익은 할인율이 클 수밖에 없다.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이나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임기 내에 성과가 나타나는 단기 문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 계획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정책의 일부만 실행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다음 사람에게 과제로 남기고 떠날 것이다. 정부의 정책결정은 경제적·정치적 실현 가능성이 중요한 판단 요소로 미래 이익에 대한 할인율이 높다. 예측과 정책 대응 사이에는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사람이 임명될 때마다 중장기비전을 다시 수립한다.

관례적으로 미래비전은 정권 초기, 세기말과 세기초 또는 10년 단위(2020년, 2030년) 등 미래에 대한 기대 또는 불확실성이 클 때 만들어진다. 우리나라도 매 정권마다 미래비전을 만들었지만, 이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제는 과제로 남을 뿐,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예측된 경보와 경고가 현실 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론이 움직이고 국민의 요구가 많아져야 구체적 대비책을 마련하고 자원을 투입하지만 출산율 저하 대책처럼 이미 늦은 경우가 너무 많다.

원래 미래비전은 사회구성원의 가치와 이익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논쟁의 장이지만, 후보 입장에서 위험이 존재하는 장이기도 하다. 비전에 대한 진영 간 싸움이나, 공약의 장기적 영향에 대한 검증을 견디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슈에 집중하여 편을 가르더라도 정치적 이득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당연한 선택이다. 미래 세대를 배려하기보다는 나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의 현재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더 나은 선거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일까? 일찍이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선원이 도착지 항구를 모른다면 불어오는 바람이 순풍일지 역풍일지 알 수 없다고 갈파한 바 있다. 팬데믹, 지구생물학적 한계, 자연재해, 사회기간인프라 유지, 공공부채, 고령화, 문화적 갈등 등등 어느 것 하나 중장기 관점 없이는 해결되지 않은 이슈들이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 혁신을 선택하지 않은 국가는 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 후보에게 우리의 꿈, 희망, 믿음을 담은 미래비전 제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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