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경영이 아니라 ES경영으로 간다

전인수 승인 2024.03.11 09:26 | 최종 수정 2024.03.13 17:51 의견 0

전인수(녹색소비자연대 이사장) 前 홍익대 교수가 "ESG경영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제목으로 제이캠퍼스(J Commentary 2024. 3. 6 2024년 제6호 2)에서 발표한 글을 다시 올립니다.

ESG 경영이 주목받기 시작한지 20년이 되었다. 팬데믹 기간에 특히 유행하던 ESG경영이 이제 월가에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ESG 경영이 퇴조하고 있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세가지로 갈 길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월스트리트에서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의 투명성)경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S&P500 지수 에 속한 기업 실적 발표에서 ESG경영을 언급한 기업이 2021년 4분기에 155개였으나 2023년 2분기엔 61개에 불과하다. 또한 ESG성과에 기반을 둔 투자를 내세우던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ESG펀드를 아예 없애거나 펀드 이름에서 ESG를 지우고 있다. ESG전도사로 불리며 기업에게 ESG경영을 요구하던 블랙록의 CEO 래리핑크 마저도 앞으로 ESG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후위기와 빈부격차 문제로 2000년대 초반 시작된 ESG경영은 블랙록에 의해 불이 붙었고 코로나19 시기에는 세계경제의 회복력(resilience)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기업들이 도입을 서두르고 있던 참이라 월스트리트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실로 황당하다. 이렇게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미국정계를 중심으로 한, 반워크(anti-woke)운동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기후위기나 사회적 불평등 문제 등 공동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진보진영의 슬로건인 ‘워크’에 대한 보수진영의 반격으로 볼 수 있다. 보수진영은 ESG경영의 확산이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치이념을 경영과 투자결정에 개입시켜 미국경제를 위기에 빠트린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ESG경영과 투자를 진보적 목표 달성을 위해 주주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다.

ESG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유엔이 2004년에 책임투자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을 제시하여 ESG가 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DBL(Double Bottom Line)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과도 기업실적에 포함시켜 공포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2019년 애플의 팀 쿡,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JP 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등을 포함한 미국 181개 주요기업 CEO들의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에서 기업의 목적을 “모든 이해관계자의 번영 극대화”로 선언하면서 ESG가 대세가 된 것이다.

이렇게 ESG가 월가에 등장했지만, 그 뿌리는 훨씬 더 깊어 1960년대부터 논의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2011년 마이클 포터 교수의 논문에서 제기된 CSV(Creating Shared Value)와 연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는 맞고 일부는 잘못된 이해다. 이유는 ESG는 경영성과와 자본투자의 새로운 방향이지만 CSR 은 경영윤리이고 CSV는 공유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기본코드가 다르다. 다만 이익추구와 함께 공동선을 경영에 담아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한다.

따라서 ESG는 CSR 및 CSV라는 헤리티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월가 경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남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는 당위론 내지는 낙관론(경영학계에서 이런 주장이 있음)은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그렇다면 ESG는 경영에서 사라질까? 살아 있다면 어떤 길로 갈까? 이 질문에 세 가지 프레임으로 답할 수 있다.

월가가 보는 ESG

경영은 크게 세 가지 프레임으로 볼 수 있는데 월스트리트(월가)경영과 이해관계자(거버넌스)경영, 그리고 메인스트리트(주류 혹은 실물)경영이다. 먼저 월가경영은 주주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영을 말하는데, 이는 시카고학파(Milton Friedman)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의 기본이념이다. 월가의 입장은 분명한데, 주주이익극대화에서 벗어나는 투자나 경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빈부격차나 인종차별 등의 사회적 정의나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기후정의 등을 월가경영에서는 수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선이나 환경문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해결할 일이지 개별기업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월가도 ESG 투자나 경영이 주가상승에 도움이 된다면 환영한다. 월가경영이 코로나19가 끝나자 바로 ESG를 주주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규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월가경영에서 ESG전체를 반워크(anti-woke)운동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유는 SG는 반워크운동에 표적이 될 수 있지만 친환경(E)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월가경영에 따르더라도 ESG에서 친환경(E)은 살아 있을 것이고 살아있어야 한다. 이유는 기후위기는 결국 주주의 생존까지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경영이 보는 ESG

두 번째로 이해관계자의 눈으로 경영을 보는 이해관계자경영이다. 이는 경영의 목적은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직원, 소비자, 공동체, 관계사 등)의 번영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월가경영에 문제가 있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2019년 BRT에서 “기업의 목적은 모든 이해관계자 번영의 극대화다” 라고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이다.

이러한 경영이념을 이해관계자자본주의라 한다. 이해관계자경영은 다른 말로 거버넌스(governance)경영이라고도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환경과 공동선을 챙기는 것, 즉 거번먼트(government)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 이런 가치를 경영에 담아내도록 하자는 뜻으로 거버넌스라는 용어를 쓴다. 이는 협치로 번역되는데 이사회 구성이 거버넌스경영의 핵심이다. 이사회에 직원대표나 소비자대표 또는 시민사회대표를 참여시켜 경영의 공익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상당히 바람직한 것으로 학계는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사회 구성과 이사들의 처우가 이사장의 마음에 달려있어 이해관계자경영을 월가경영의 변형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ESG를 경영의 한 축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사회만 잘 구성하고 운영된다면 이해관계자경영에서 ESG는 살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잘’이란 것이 애매하고 주관적이라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영은 미래를 향해 베팅해야 하는데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회의는 대개의 경우 집단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메인스트리트 경영이 보는 ESG

세 번째로 메인스트리트 경영이다. 이는 주류경영 혹은 실물경영을 말하는데 금융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주주경영이나 이해관계자경영을 넘어서는 원래의 경영을 말한다. 경영학에서는 메인스트리트 경영을 전제로 연구하고 논의하기 때문에 매니즈먼트라고 하면 으레히 주류경영을 생각한다. 따라서 주류경영이라는 말을 잘 쓰지는 않는다. 필자가 월가경영이나 이해관계자경영과 대비하여 경영의 원래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 선택한 표현이다.

월가경영은 주주이익극대화가, 거버넌스경영은 이해관계자의 번영극대화가 핵심이다. 그렇다면 주류경영의 핵심은 무엇일까?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1909~2005)교수는 앙트러프러너십을 말한다. 기업가정신으로 번역되는 앙트러프러너십을 그는 ‘혁신’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혁신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나 사업방식을 개발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류경영의 핵심은 기업가정신 혹은 혁신의 극대화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류경영이 지지하는 이념은 무엇일까? 자본주의라는 이념에 묶어서는 안 된다. 한 마디로 자유다. 자유가 없는 곳에 기업가정신은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자유를 존중하고 환대하지 않는 곳에서 기업이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메인스트리트 경영은 ESG를 어떻게 볼까? 먼저 친환경인 E를 혁신의 기회로 볼 것이다.

이른바 그린경제 (green economy)로 본다. 온실가스 발생의 주범으로 꼽히는 경유차나 가솔린차를 대신하는 전기자동차로의 GX(green transformation)을 단행하여 현대자동차는 창사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메인스트리트 경영에서 사회적 책임인 S는 이미 받아들이고 있고 더 확산할 것이다. 이미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까지도 사회적 공헌을 하고 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재신비화(re-mystification)로 생각하여 자발적으로 한다. 출생률 감소를 막기 위해 최근 부영그룹에서 2021년 이후 임직원 출산자녀에게 1억 원을 지원하는 것을 발표하였다. 오뚜기의 창업자는 심장병 어린이치료를 꾸준히 지원한 선행이 사후에 알려져 ‘갓뚜기’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 경영 재신비화의 예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직면한 출생률 감소, 지방소멸, 빈부격차를 기업이 직접 나서서 해소하려고 애쓰는 것은 내부 임직원이나 이해관계자에게도 활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S는 더 늘어날 것이다. 세 번째로 투명경영인이다. 사실 투명경영이란 이름으로 대주주 CEO가 고발되고 쫓겨나는 일까지도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과연 투명성이란 무엇일까? 사회를 위한 기부안이 일일이 이사회를 통과해야 하고 녹색전환기술에 대한 투자를 이사회 결재를 받아야 한다면 과연 가능할까? 현대자동차는 전기자동차로 전환했지만, 이 분야 기술에서 가장 앞서가는 도요타는 하이브리드를 거쳐 전기차로 가려 한다. 이유는 이해관계자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인스트리트 경영에서 이를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면...

ESG 경영이 월가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ESG의 뿌리를 알아보고 향후 갈 길을 세 가지 경영프레임으로 생각해보았다. 경영의 프레임에 따라 다른데, 월가경영과 이해관계자경영에서 E는 사업기회로 받아들이겠지만 SG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메인스트리트 경영은 ESG에서 ES는 받아들이고 확산하겠지만 G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유는 E는 새로운 사업기회가 될 수 있고, S는 기업가정신을 키우는 경영 재신비화의 길이지만, G는 기업가정신의 기본인 자유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ESG경영 대신 ES경영이라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저작권자 ⓒ 창조아고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