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태!!! 법으로 풀어지나? 누가 솔로몬 지혜를 가져오지?

장항석 승인 2024.03.03 12:35 | 최종 수정 2024.03.07 23:08 의견 0


(아고라외침_의대교수 장항석) 까마득한 옛날, 우리의 선조가 되는 단세포 생명체는 무한의 역경과 위험을 이기고 오늘날 이런 생명의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태고에 탄생한 무수히 많은 생명체 중 살아남은 그 단세포 생물은 모든 나쁜 경우를 다 피하면서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위험한 것은 본능적으로 회피하며 방어하려 듭니다. 자신에게 가장 편안하고 맛난 것,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것은 원초적인 우리 생명의 DNA로부터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본능입니다. 아무리 이성이 발달하고 많은 수행을 쌓은 자라 해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면 비겁을 생각하기에 앞서 먼저 피하고, 방어하고 상대에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성이 이끌었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역경을 이기면 더 발전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우선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발전이든 뭐든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우연히 한 TV 채널에서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두 번째 보는 영화였습니다. 예전에 처음 그 영화를 볼 때는 정말 화가 많이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라의 중신이라는 것들의 한심한 작태며, 비겁하기 짝이 없는 왕의 모습과, 당하고만 있는 백성들의 아픔이 눈에 밟혔습니다. 제가 기억하던 70년대와 80년대 시대의 암울함이 영화 속 백성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마음이 불편해서 영화를 끝까지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남한산성>이 정말 슬픈 영화로 다가왔습니다. 비감한 논지의 최명길과 김상헌은 그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리고 양심에 따라 추호의 흔들림 없이 움직였습니다. 비록 다른 의견을 내기에 필연의 운명으로 서로 물고 뜯을 수 밖에 없었지만 마음속에 상호간의 의견을 깊이 존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고의 역적이라고 불릴 위험을 잘 알고 있음에도 최명길은 삶의 길을 가자고 하고, 기개 높은, 그리고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선비인 김상헌은 그런 굴욕스러운 길이 진정 삶의 길이 맞느냐고 반문합니다. 읊조리는 듯한 그들의 영화대사는 결코 높은 음역으로 가지 않았음에도 그 대사가 처절한 외침으로 다가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에는 비겁하게 보이고 결정장애를 겪는 왕의 모습도 역사 앞에서 의사결정을 해야하는 처절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의료현장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습니다. 호기로운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 혹은 자신들의 장기를 내세우면서 미디어를 활용해 양극단의 외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분명, 자신이 가장 옳다고 여길 것입니다. 상대측을 최대의 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기억해야 합니다. 상대를 악마시하면 결국 한쪽이 죽어야 일이 끝난다는 겁니다. 이런 시점에 의과대학 교수로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대학의 많은 교수들은 거의 전선에 나서질 않습니다. 강대강으로 내닫는 이들의 눈에는 우리 교수들이 진정 비겁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굳건한 의지나 철학이 없어서가 아니고, 비합리적인 것에 반대할 용기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어딘가를 찬성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은 경험자로서 이 일이 너무 큰 상처를 남기지 않고 마무리되길 바라면서 길지 않은 시간에 원래의 기능으로 의료현장이 회복되길 원하는 까닭입니다.

오늘 이 시간, 처절한 삶을 살았던, 각기 극단의 철학으로 무한 대치했던 우리들의 선조를 떠올립니다. 결국 누가 옳고 그름으로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숭고한 경지를, 그리고 그런 대립 중에도 서로를 존중하던 그 모습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고 그 길은,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이런 단순한 논리로 엮어낼 수 있는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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