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혁신하라!(2)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미래인문학 연계전공 주임교수)
이종관
승인
2024.02.02 10:00 | 최종 수정 2024.02.29 09:10
의견
0
3-2) 의미 혁신의 최근 사례
이제 이를 과거가 아니라 최근 첨단 기술영역에 속하는 로봇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로봇의 작동은 일반적으로 인간노동을 대신 하는 것으로만 그 의미가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로봇 기술 개발에서 작업을 최대한 빠르게 자동으로 처리하는 것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이때 혁신은 이 문제에 대한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로봇이 산업용 작업기계라는 의미로 해석된 상태에서는 작업 속도와 정확성을 급격히 증강시키는 획기적 아이디어를 창안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방법을 찾아내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절박하게 요구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산업용 로봇이라는 의미를 만족시킬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로봇은 점점 가치를 잃어갈 것이다.
그러나 로봇의 의미가 공장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고도의 효율성과 정확성으로 작동하는 대체노동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즐거움을 주는 문화적 기구로 의미가 바뀐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경우 가장 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주어진 과업을 처리하는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혁신은 아니다. 오히려 다소 느리게 움직여서 기술적으로 과업처리에 최적화되지 못한 로봇이 오히려 여가의 향유라는 인간의 문화활동에 적합한 기술로서 그 가치를 발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로봇의 성능을 갖는 의미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문화활동과의 관계에서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혁신으로 이룬 실제 사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독일 Kuka사의 로봇 의미 혁신이다. 로봇이 갖고 있는 통상의 의미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고 또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중노동을 해내는 자동기계이다. 로봇제조업체는 바로 이 로봇의 상식적 의미를 최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빠르고 정확하고 힘센 로봇을 생산하는 기술 혁신에 매진한다. 그러나 Kuka는 로봇 팔위에 두 개의 의자를 설치하고 여기 사람이 안자서 로봇과 상호작용 하면서 스릴을 향유하는 놀이기구로 로봇이 인간에 갖는 의미를 혁신했다. 이렇게 의미가 혁신될 경우 로봇에게 요구되는 기능은 빠르고 더욱 정확하게 움직이는 강력한 작동이 아니다. 오히려 속도가 다소 늦더라도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인간에게 위험을 즐기는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 로봇의 작동이 의미하는 바이다. 이렇게 로봇이 작동하는 의미가 변화하고 이를 통해 로봇의 작동이 구현하는 사용자의 활동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로봇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탄생한 제품이 로보코스터이다. 로봇 작동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일어나는 변화는 로봇의 수요를 산업 로봇 시장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놀이기구시장을 창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4. 의미 혁신, 왕도는 있는가?
그런데 기업이 의미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왕도가 있는가.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왕도는 고도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단순하지만 망각되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서 열린다. 기술이 인간에게 사용되는 것이라면, 그 기술을 상용화한 제품은 기계적 작동체가 아니라 인간의 문화적 삶에 의미를 갖는 문화재이어야 한다. 따라서 의미혁신의 왕도를 여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될 것이다.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제품이 인간의 문화적 활동에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가?’
그런데 의심이 남는다. 정녕 이러한 근본적이고 단순한 질문이 의미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기업이 할리데이비슨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할리데이비슨은 모터사이클을 만드는 회사이다. 모터사이클은 기술적으로만 정의하면 어떤 물리적 속도를 갖는, 어떤 물리적 출력을 내는 수송기계이다. 그런데 할리데이비슨은 자기들이 생산하는 모터사이클의 의미를 수송기계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터사이클의 의미를 ‘자유를 지향하는 인간의 활동을 돕는 동반자’로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할리데이비슨의 기술자들은 엔진 역시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그들에게 엔진은 내연기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엔진은 모터사이클의 영혼이다. 하지만 냉철한 이성을 소유한 독자에게는 이 얼마나 황당한 소리일까. 그러나 이 황당한 소리는 사실 할리데이비슨을 만드는 사람들의 뛰어난 의미 해석능력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모터사이클이 자유를 향한 인간 활동의 동반자라면, 그 모터사이클은 인간만큼 영혼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모터사이클에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엔진이다. 따라서 엔진이 가져야할 덕목은 모터사이클과 함께 자유를 실현하는 문화활동을 하는 사용자와 공감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모터사이클의 엔진은 모터사이클을 타는 인간의 동반자가 되려면, 그 사용자와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늘 경험하듯 인간 공감의 결정적 요소는 음악적인 것이다. 음악은 멜로디, 사운드와 리듬으로 구성된다. 물론 모터사이클의 엔진은 멜로디는 구현할 수 없다. 그러나 사운드와 리듬은 구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모터사이클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엔진의 연구와 개발을 어떤 방향으로 집중시켜야 하는지 결정될 수 있다. 그것은 엔진이 내는 소음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와 리듬으로 혁신하는 연구 개발이다. 그리고 이 작업이 성공하면, 한낮 내연기관에 불과한 엔진은 사용자와 공감하는 문화재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은 할리데이비슨의 마니아가 될 수밖에 없다.
5. 맺음말- 새로운 R&D 공간이 필요하다
20세기 초, 산업화에 매료되어 모든 것을 기능으로만 이해했던 기능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
그러나 이제 혁신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으로 인간에게 환영받으려 한다면, 그 구호자체가 다음과 같이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 기능은 의미에 따른다.”
결국 혁신을 위해 우리가 함양해야 할 능력은 기술이 문화적 인간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혀내는 해석학적 능력이다. 이러한 해석의 능력을 위한 학문이 철학 나아가 인문학이다. 따라서 기술 혁신이 의미 혁신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공학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우리가 진정 혁신을 원한다면 기술자와 철학자 나아가 인문학자가 함께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협력적으로 연구하는 해석학적 R&D 공간의 마련이 절실하다. 이는 최근 4차산업 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 알고리즘 연구 개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개발하고 있는 알고리즘이나 앞으로 개발되어야할 알고리듬이 인간의 해석학적 의미실현활동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불분명하면 그 알고리즘은 그냥 잘 짜여진 무의미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저작권자 ⓒ 창조아고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