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혁신하라!(1)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미래인문학 연계전공 주임교수)

이종관 승인 2024.01.26 14:08 | 최종 수정 2024.01.26 14:12 의견 0

1. 4차산업 혁명과 혁신에 대한 통념- 성능의 획기적 증강

오늘날 경제 발전의 실질적 동력은 R&D이다. 각 기업 나아가 국가는 R&D에 엄청난 인적 물적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R&D의 목적은 혁신이다. 특히 2008년 세계경제가 순식간에 위기의 함정에 빠진 이후 이로부터 탈출은 혁신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거의 종교적 신념이 되었다. 혁신이 이 시대의 지상과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상과제는 이제 거대한 역사적 변혁을 향하는 4차산업혁명으로 명명되며 미래를 향하는 역사의 흐름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대체 혁신이란 무엇인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혁신의 이미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슘페터가 자본주의 경제의 탁월한 기능원리로 주장한 바가 있다. 그리고 그 혁신은 점진적 혁신과 급진적 혁신으로 구분된다. 점진적 혁신은 기존의 것이 갖고 있는 단점이나 결함을 부분적으로 개선하며 일어나는 혁신이다. 급진적 혁신은 문자 그대로 기존과는 단절적인 어떤 돌파가 일어나는 혁신이다. 증기기관에서 내연기관으로의 기술발전, 혹은 흑백 TV에서 컬러TV의 기술발전은 제품의 성능을 다른 차원으로 진입시키는 대표적 기술 혁신이다.

그러나 점진적 혁신이던 급진적 혁신이던 혁신론은 제품의 성능 증강과 관련된 기술혁신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미 혁신론의 창시자 슘페터에서도 혁신은 기술의 혁신이 핵심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그의 발언에 분명하게 노출된다. "우편 마차를 아무리 늘린다고 해도 기차의 시대가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론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잠복하고 있다. 그것은 기술의 사용자는 그저 이 성능을 소비하는 자일뿐 혁신에서 어떤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2. 혁신에 대한 혁신적 입장- 의미 혁신의 중요성

2-1) 기술의 사용자, 그는 인간이다.

그러나 사용자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철학적으로 보면 기능과 성능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20세기에 등장한 실존철학의 입장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항상 어떤 의미를 추구하여 그 의미를 실현시키기 위해 활동한다. 니체는 말한다. “ 인간은 살아야 할 의미가 분명하다면, 어떠한 고난도 견디어 낸다.” 그런데 이는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부터 격리된 철학자들의 뜬 구름 잡는 소리가 아닐까. 하지만 빅터 프랑클이란 신경생리학자이며 철학자는 인간과 삶의 의미의 필연적 관계를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체험으로 확인하였다. 그 현장은 바로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던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였다. 그는 자신의 처절한 수감 생활을 통해 발견한 인간 삶의 본질을 한 마디의 책 제목으로 생생하게 전한다. “인간, 의미를 찾는 존재”. 실로 인간은 자신의 사는 삶이 무의미가 하다고 느낄 때, 활동의 동기를 상실한 무력증에 빠지거나 심지어 삶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가.

2-2) 문화적 인간, 기술, 그리고 의미혁신-의미가 불분명한 기술은 퇴출된다.

이렇게 인간의 활동은 삶의 의미를 실현시키기 위해 수행된다. 인간의 활동은 만유인력 같은 외부 물리적 원인이나 아니면 본능과 같은 동물적 원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한 의미실현활동은 물체나 동물의 움직임과 같은 자연적 사건이 아니라 문화적 활동이다. 때문에 이 문화적 활동은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도구와 기술을 통해 실행될 수밖에 없다. 도구와 기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또 인간이 호모화버라는 생명체로 생물학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도구와 기술이 제작 개발되는 이유는 결국 카시러 같은 철학자가 강조했듯이 인간이 근본적으로 의미 실현 활동을 하는 문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구의 제작이나 기술 개발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물리적 기계적으로 측정되는 성능 보다는 그 기술의 사용자인 인간의 문화 활동에 대해 갖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는 혁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술 혁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인간의 문화 활동에 가질 수 있는 의미를 혁신하는 것이다. 사실 기술적으로 엄청난 성능향상을 수반하는 혁신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 기술이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문화활동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가 불분명할 때, 그 기술적 혁신은 문자 그대로 무의미한 기술 혁신으로 전락하여 퇴출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구글 글래스이다. 구글글래스는 2013년 최고의 혁신적 기술을 적용한 기기로 찬양되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도 쓰지 않는다.

의미 혁신이 주목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기술혁신은 많은 재원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의미의 혁신은 반드시 기술 혁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혁신은 기존의 기술이 인간의 삶, 즉 인간의 문화적 활동에 대해 갖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엄청난 자본의 투자가 없이도 가능하다.

3. 의미 혁신의 사례들

혁신의 과거와 현재를 기술혁신보다 더 중요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포착된다. 이 혁신은 바로 기술을 구현한 제품이 인간의 문화활동에 대해 갖는 의미의 혁신이다.

3-1) 과거 사례

1900년 경 전파로 음성을 송수신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 기술은 서로 무선 교신을 할 수 있는 기기로 실용화된다. 그런데 이 기술이 세상을 바꿀 만큼 혁신적인 기술이 된 것은 이 기술이 인간의 삶에 대해 갖는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즉 전파 송수신기가 이제 단순이 음성을 송수신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기술로서 해석되며 그 의미가 혁신된 것이다. 이 의미의 혁신에 의해 출현한 기기가 바로 라디오이다. 라디오의 기능을 구성하는 기술은 이미 존재했었다. 그러나 라디오가 음악을 인간에게 들려줌으로써 인간의 문화활동에 대해 갖는 의미는 그 전파 송수신 기술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음성을 전파로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이 단순히 음성을 더욱 선명하게 송 수신하는 기술적 성능 향상을 향해서만 돌진했다면, 라디오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에디슨이 발명한 음성 녹음기술이다. 에디슨은 축음기 공장을 설립한 후 1889년부터 포노그래프를 시판했다. 그러나 이 기술 역시 애초 단지 음성을 기록하는 기구로서만 그 의미가 해석되어 에디슨의 경우 개짖는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는데 그쳤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음성녹음 재생기를 음악을 재생하는 기기로 의미를 혁신함으로써 20세기 문화에 엄청난 격변이 일어났다. 그럼으로써 귀족들의 향유물이었던 고급음악을 보통사람들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로부터 단절된 귀족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취향에 감동을 주는 새로운 음악장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중음악이다. 나아가 이 축음기와 라디오의 결합은 또 다른 문화혁신을 일으켜 이제 사람들은 도처에서 음악을 특히 대중음악을 즐기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파 송수신과 소리 녹음 기술의 의미 혁신에 의해 일어난 인간 문화 활동의 거대한 혁신은 이제 70년대 들어 한 파격적인 대중음악에 의해 증언된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킨 록그룹 퀸의 라디오 가가이다. 이 라디오 가가는 음악의 형식, 전달방식, 그리고 그 가사의 내용과 그 음악의 향유자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단 한곡의 음악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에서 의미의 혁신이 무엇인지 분명해짐과 동시에 기술혁신은 그 기술이 갖고 있는 의미가 혁신될 때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진정한 혁신으로 완숙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의미 혁신은 제품의 디테일이나 기술적 문제에 집중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기술적 문제에 집중하여 해법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성능의 획기적 혁신을 낳을 수 있다. 예컨대 컴퓨팅 파워의 비약적 향상, 또 뇌 스캔 기술 해상도의 급격한 향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제품이 인간의 문화 활동에 대해서 갖는 의미는 그 보다 높고 넓은 차원에서 발생한다. 제품은 아무리 그것이 완성된 완제품으로 사용자에게 제공된다고 해도 사용자가 그것을 통해 인간으로서 어떤 의미 실현 활동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제로 사용자가 어떤 활동으로 결단하는가에 따라 제품의 의미 그리고 나아가 그 의미에 종속된 기능이 달라진다. 제품을 만드는 기술은 그 자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항상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문화 활동 속의 기술이다.

* 다음 기사에서는 의미혁신의 최근사례를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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