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재활용이 사기라는데
폐플라스틱에서 석유를 뽑는 공정은 파일럿 설비에서는 가능했다. ... 실제로는 고비용(폐플라스틱 수송 비용과 선별 비용, 높은 에너지 사용)과 생산수율 문제가 있었고, 화재에 취약하며 유해 화학물질 발생 등도 나타났다고 한다.
민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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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 09:31 | 최종 수정 2024.10.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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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 협상 위원회’ 부산 개최(INC*-5, 11월 25~12월 1일)를 앞두고 꺼림칙한 뉴스가 나왔다.
미 캘리포니아주 롭 본타(Rob Bonta) 법무장관이 지난 9월 24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폴리머 생산 업체인 엑손모빌(Exxon Mobil)에 대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소송 사유는 재활용이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소비자를 오도했고, 이를 설득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속임수 캠페인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플라스틱이 근절되기 어렵고 특정 재활용 방법으로는 생산된 폐기물의 상당 부분을 처리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재활용을 플라스틱 폐기물의 ‘만병통치약(cure-all for plastic waste)’으로 홍보했다고 덧붙였다.
특히나 엑손모빌을 비롯한 거대 석유화학 회사들이 플라스틱 폐기물 및 오염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는 화학적 재활용을 ‘고급 재활용(advanced recycling)’이라고 선전함으로써 소비자를 계속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급 재활용이란 다름 아닌 폐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는다는 프로세스로서 높은 온도(약 400~500℃)로 가열해 플라스틱을 기본 화학 성분까지 분해하는 재활용 방식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폐플라스틱 열분해’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석유화학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에서 기름 뽑는다.’는 펼침막을 내걸고, 관계 장관까지 참석한 기공식 보도가 연일 있었다. 당시(’22.5) 어느 신문은 ‘고물이 보물로’라는 기사 제목을 뽑을 정도였다. 마치 플라스틱 재활용의 신기원이나 된 것처럼 보도되었다.
폐플라스틱에서 석유를 뽑는 공정은 파일럿 설비에서는 가능했다. 그러나 소송에서 나타난 것처럼 실제로는 고비용(폐플라스틱 수송 비용과 선별 비용, 높은 에너지 사용)과 생산수율 문제가 있었고, 화재에 취약하며 유해 화학물질 발생 등도 나타났다고 한다. 따라서 실패한 재활용시스템이라고 소장에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프로세스는 현재 진행 중이다. 설비 완공(’25~26년 예상) 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제발 미국의 사례가 기우였기를 바란다.
엑손모빌은 반격에 나섰다. 당국은 재활용시스템이 효과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수년간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와서 엑손을 탓한다면서 “진작에 지속 가능한 재활용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겠어.”라고 빈정대며 화살을 주 정부의 무능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전의 소송들이 개별 플라스틱 제품이나 판매하는 회사를 표적으로 삼았다면, 이번 소송은 플라스틱 원자재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한 첫 번째 사례가 된다. 환경단체들의 방향 전환이 이미 시작되었다. 이번 소송 건을 우리나라 언론도 ‘재활용은 사기’라는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재활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고급 재활용’은 어디까지 진행 중이고, 실패라고 주장하는 고급 재활용과 우리가 들여온 원천기술은 무엇이 다른지, 협약을 맺은 기업은 건재한지, 솔직히 믿을 만한 기술인지 등의 기사는 한 달이 됐는데도 찾을 수 없다. 국정감사장에서도 조용하다. 남의 집 불구경 정도에 그치고 있는 모양새가 안타깝다.
캘리포니아주 사례에서 보듯이 재활용은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이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OECD국가 중 일본이 재활용 관련 법률과 재활용시스템에서 가장 잘 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일본도 독일을 모방했지만, 그들은 그들에 맞게 계속 재활용제도를 손질해 왔다.
우리나라는 욕하면서 배운다는 옛말처럼 일본 법과 제도를 모방했으나, 우리에 맞게 계속해서 손질하고, 그리고 새로운 제도를 발굴하고 발전시켜 오고 있다. 우리의 재활용제도를 개도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근래에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프랑스가 도입한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좋은 재활용제도가 있더라도 지속되고 발전하려면, 재활용에 관한 국민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번 캘리포니아 소송 내용에서도 석유화학 기업들과 산업단체들이 미국인들에게 ‘버리는 생활방식(throw-away lifestyle)’을 추구하도록 장려하고 플라스틱의 생태학적 위험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를 경시했다고 적시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의 저변에 있는 재활용의 한 단면을 보면, “아깝다(もったいない)”라는 말이나 단어를 지금도 자주, 그리고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독일 또한 그렇다. 우리도 이 단어를 자주 쓰고 말하다가 ‘88 올림픽’을 전후로 뜸하더니 근래에는 아예 쓰지 않는다고 한다.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도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없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아깝다거나, 아끼라는 말을 요즈음 부모들은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할라치면 아이들 자존감 운운하면서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새로운 신조어가 범람하는 요즈음 ‘단세포적인 소비’라는 표현이 있다. 최근 들어 대표적인 ‘고관여 제품’으로 불렸던 고가의 소비재조차 충분한 숙고를 하고 구입하기보다는 순간의 감정이나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단편적이고 즉흥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본다. 고가의 신제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주위에서 날 밤을 새우며 줄을 서는 광경이 그것이다. 정보와 기술의 발달이 구매 결정을 신중하게 하고 높인다고 봤지만, 전에 없던 불확실성과 정보과잉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집중도를 떨어뜨려 복잡한 의사결정을 피하는 단순한 소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소비에 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면서 소비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InterBiz blog 9.23 참조).
우수 재활용 제품(GR:Good Recycled) 홍보공모전이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는 한 톨의 정부 지원 없이 GR기업과의 협력으로 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재활용 제품이니까 사 주세요.” 하는 ‘구걸 마케팅(?)’이 아니라 자원과 에너지까지 절약한, 품질이 우수한 재활용 제품임을 소비자 앞에 당당히 홍보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롭 본타 법무장관에게 대한민국의 ‘Good Recycled Product System(우수한 재활용 제품 품질 인증 제도)’ 도입을 공개 제안한다.
*INC=Intergovernmental Negotiating Committee to develop international legally binding instrument on plastic pollution, including the marine environment.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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