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사과의 고장으로 만든 의료선교사 존슨

미국의 의료선교사 우드브리지 존슨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열어 한센병 요양소를 설치하고 천연두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그는 미국에서 사과나무 묘목을 들여온 뒤 사택 뜰에 심고 인근 주민들에게도 나눠줘 대구를 사과의 고장으로 만들었다.

이희용 승인 2024.10.14 09:33 의견 0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뜰에서 자라고 있는 사과나무와 유래에 관한 설명을 담은 표지석


“여기에 뿌리내린 이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여온 한국 최초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 동산의료원 역사를 말할 뿐만 아니라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만든 의미 있는 생명체이다. 초대 병원장 우드브리지 존슨 박사가 미국 의료선교사로 동산병원에 재임하면서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해 이곳에서 재배한 것이 대구 서양 사과나무의 효시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의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박물관 뜰에는 수령 90여 년에 이르는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다. 그 앞에 세워진 표석에는 ‘사과나무 100년’이란 제목 아래 이 같은 글귀가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존슨은 부임 이듬해 사과나무 묘목 72그루를 미국에서 들여와 사택 뒤뜰에 심고 시민들에게도 나눠줬다. 이것이 널리 보급돼 그때까지 재래종 능금을 키우던 대구는 사과의 고장이 됐다. 현재 시조목은 죽고 대구동산병원에 유일하게 남은 2세 나무가 2000년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됐다.

존슨은 1869년 미국 일리노이주 게일즈버그에서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주 의과대를 졸업하고 수련의와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1897년 12월 25일 의료선교사로 대구에 파견됐다. 한국식 이름은 장인차(張仁車)였다.

그는 1899년 대구시 중구 남성로에 ‘미국약방’이라는 두루마리 족자를 내걸고 환자들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특이한 용모의 서양인을 양귀(洋鬼)라고 부르던 시절이고, 기독교 신자도 거의 없던 때여서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듬해 제중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다. 대구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었다.

환자들은 서양 의술이 낯설어 선뜻 몸을 맡기기를 꺼렸으나 청진기나 주사기 등 서양식 의료기구들을 신기하게 여겨 구경꾼은 많았다고 한다. 치료에 효과를 본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자 소문이 퍼져 나중에는 대구 근교에서도 달구지를 타고 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존슨은 1909년 6월 27일 제왕절개수술로 아기와 엄마의 생명을 살려 높은 명성을 얻었다. 한센병을 치료해준다는 말을 듣고 환자가 몰리자 한옥 한 채를 나환자 요양소로 썼다. 천연두 백신을 미국에 대량 주문한 뒤 예방접종을 실시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

그는 1903년 제중원을 중구 동산동으로 이전하고 1906년 새 건물을 지었다. 이 무렵 의학도 7명을 선발해 서양의학을 가르쳤으나 의사를 배출하지는 못했다. 1911년에는 동산기독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1924년에는 간호부 양성소도 설립했다. 동산기독병원과 간호부 양성소는 훗날 계명대 의과대 부속 동산의료원과 계명대 간호대로 발전했다.

존슨은 동산기독병원 초대 원장도 맡았다가 아치볼드 플레처에게 물려주고 이듬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귀국한 뒤 목장 경영에 성공했고, 지역 비행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며 사회에 헌신했다. 1951년 82세로 눈을 감았다.

문화재청은 1900년대 초 존슨이 사용했던 상아 청진기, 외과 수술도구, 휴대용 에테르 마취기, 금바늘 주사기, 간접방사선 촬영기 튜브, 미생물 배양기 등 의료기구 32점과 의학서적 '백초약학', 학술지 '조선간호부 회지'를 2008년 근대문화유산 목록에 올렸다.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의 사문진 나루터는 1900년 3월 26일 피아노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곳이다. 피아노 조형물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고 해마다 기념연주회도 열린다. 피아노의 주인은 존슨의 부인 에디드 파커였다. 낙동강을 따라 배에 실려온 피아노는 이곳에 부려진 뒤 소달구지에 실려 제중원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육중한 물건에서 둥당거리는 소리가 들려 귀신통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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