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에서 새로운 인재상을 찾는다

전인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장, 전 홍익대 교수)

전인수 승인 2024.09.28 11:51 | 최종 수정 2024.09.28 12:46 의견 0

슘페터(좌)와 드러커(우)


우리가 알고 있는 기업가정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업가정신을 먼저 알아본다. 기업가정신의 대표적 학자인 슘페터(1883~1956)와 드러커(1909~2005)는 기업가정신을 혁신으로 본다. 즉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기업가정신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들의 헤리티지를 잇는 크리스텐센(1952~2020)이 와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란 개념을 만든 이후 이것이 기업가정신의 정의로 정착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 빅테크 기업의 창업자들이 기업가정신의 롤 모델로 꼽힌다.

또 다른 유형의 기업가정신도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맨땅에 헤딩한 한국의 초기 기업가정신이다. 아무래도 호암 이병철(1910~1987), 아산 정주영(1915~2001) 그리고 주산 김우중(1936~2019)(실패한 기업인이지만 주산이 펼친 세계경영은 지금도 한국기업인이 본받아야 한다고 보아 빅3인에 포함)이 대표적 롤 모델이다. 이런 유형의 기업가정신은 파괴적 혁신을 강조하는 기업가정신에 속하지 않는다. 이들이 보여준 기업가정신은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이다. 파괴적 혁신으로 떼돈을 번 기업가정신이 아니라 업(business)을 일으킨 정신을 말한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뜻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강한 의지로 도전하고 일한 기업가정신이다.

이후 우리가 알고 있던 기업가정신은 변모하게 된다. 늦게 출발했지만 빠른 추격으로 1등을 따라 잡는, 소위 말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의 기업가정신인데, 이건희(1942~2020) 회장과 정몽구(1938~) 회장을 롤 모델로 꼽는 기업가정신을 말한다. 초격차, 초경영, 뚝심경영 등의 이름이 붙은 기술중심의 ‘따라잡는’ 기업가정신을 말한다.


이들은 지니어스형 기업가다

세 가지 유형의 기업가정신을 예시했지만 알고 보면 성공한 기업가, 즉 천재(genius)형 기업가들을 우리는 기업가정신의 롤 모델로 생각하여 칭송하고 연구하고 이들을 따르라고 하는 것이다. 천재형의 기업가는 분명히 있고 존중해야 하겠지만 이들은 특수하고 소수다. 아무것도 없던 1960 년대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의 빅 3 기업가나, 제조업이 거의 사라진 미국에서 창업해서 성공한 빅테크 영웅들은 시대와 공간의 특수성이 배출한 영웅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소수다.

수많은 기업인들이 불철주야 비즈니스현장에서 목숨 걸고 뛰는데 소수 영웅담을 우리가 연구해서 어떤 메시지를 이들에게 줄수 있을까, 강한 의문이 든다. 그래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기업가정신을 다시 생각하기로 한다. 기업가정신은 “기업가(entrepreneur)+정신(ship)”인데, 우리는 정신은 간과하고 성공한 소수 기업가의 성공방식에 주목하여 기업가정신을 이해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가정신은 돈 많이 번 사람이나 갖는 것이지 평범한 나에게는 먼 얘기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경제는 세계 톱10에 들 정도로 커졌고 우리사회는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소수의 특수한 기업가들의 성공담에 집착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기업가정신 논의에서 배제된 기업가적 정신(~ship=entrepreneurial spirit)으로 눈을 돌리려 한다.


기업가적 정신은 주인정신이고 티모스다

기업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따로 없지만 대강 두 갈래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철학으로 접근하면 주인정신(host-ship)이고 서양철학으로 접근하면 티모스(thymos)다.

중국 당나라의 선승인임제선사(?~867)의 그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그대들이 그 어디에 처한다 해도 그곳의 주인이 되면 그곳이 모두 참된 곳이 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고, 조직의 주인이고, 사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길이 보이고 열린다는 것이다.

한편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티모스는 기개나 기백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측정하기 쉽지 않아 경영학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철학자나 작가들은 줄곧 사유의 중심에 두고 있다. 예를 든다.

<예1> 실존주의 철학자인 니체(1844~1900)가 말하는 티모스. 그가 말하는 티모스는 강건한 정신이다. 강건한 정신의 소유자를 초인(짜라투스트라)이라 한다. 초인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고 고양시킨다고 한다. 니체는 이렇게 설파한다.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예2> 애덤 스미스(1723~1790)가 말하는 티모스. 국부론으로 유명한 그의 초기 저서가 ‘도덕감정론’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이기심을 긍정하면서도 모든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이기심이 자본주의의 사상적 토대라고 한다. 그는 이러한 이기심을 ‘도덕감정’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티모스다.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은 참 아름다운 것이다.

<예3> 헤밍웨이(1899~1961)가 말하는 티모스. 그는 ‘노인과 바다’에서 어부인 산티아고 노인을 통해 티모스를 말하고 있다. 실패나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곁눈질하지 않고 가던 길 묵묵히 가는 사람이다. 설혹 주어진 운명이 가혹하더라도 피하거나 굴하지 않고 끌어안고 가는 모습을 산티아고는 보여준다. 그가 망망대해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잡은 청새치를 뜯어먹는 상어 떼는 일반대중을 말한다.

<예4> 헤세(1877~1962)가 말하는 티모스. 그는 소설 ‘데미안’에서 티모스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 그는 세 가지로 티모스를 말하고 있다. 갇힘(알)을 인식하는 밝은 정신, 이를 깨트려 새가 되려는 용기, 그리고 숭고함(아브라삭스)에 대한 그리움이다.


브릴리언트형 인재상을 생각한다

이 글에서 제안하는 인재는 기업가적 정신을 갖는 이를 말한다. 하지만 기존의 기업가정신에서 그리는 지니어스형 인재상은 지금의 시대에 맞지 않다고 본다. 그러기에는 우리경제나 우리사회가 처한 현실이 너무 많이 달라지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새로운 인재상을 생각한다. 브릴리언트(brilliant)형 인재다. 빛나는 인재다. 세계적 명성을 얻어 빛나는 게 아니라 빛나는 정신인 티모스가 살아 있어 밝은 빛을 발하는 인재다. 강건한 정신, 도덕적 이기심, 산티아고의 꿋꿋함, 그리고 알을 깨는 용기 등을 갖는 인재를 말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이러한 인재는 있다.

간단히 예를 든다. 한 달 이상 극장가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감독: 빔 벤더스, 주연: 야쿠쇼 코지)”가 빛나는 인재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공중화장실 청소 일을 하면서 돈과 일의 노예가 되지 않게 사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리는 영화다. 청소는 철저히 하고, 점심시간에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감탄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고전(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읽는 일상이다. 이렇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혼자 살고 있지만 불안의 그림자라곤 없다.


어떻게 하면 브릴리언트형 인재가 될 수 있을까?

플라톤(BC 427~BC 347)은 ‘국가’에서 인간정신은 욕망, 이성, 티모스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것이 영혼삼분설이다. 따라서 원래 우리의 정신에는 티모스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잊힌 것이다. 아마도 그 자리를 중세에는 신이, 근대 이후에는 이성과 욕망이 차지하면서 잊혔을 것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티모스는 잠재해 있다. 따라서 이 보편적인 티모스의 존재를 믿고 복원하는 이가 바로 브릴리언트한 인재가 되는 길이다.

어떻게 잊힌 티모스를 복원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바깥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복원해야 하지만 그래도 조언을 하자면 이렇다. 먼저 당당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가? 많이 알아야, 돈이 많아야, 권력이 있어야 당당해지는 것은 껍데기다. 진정한 당당함은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다.

‘빨강 머리 앤’에 그 당당함이 잘 그려져 있다. 작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1874~1942)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조부모의 손에 자라면서 겪은 것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앤은 양부모에 입양된 고아소녀지만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요구할 것은 당당히 하고 자기가 맡은 일은 알아서 처리하며, 숲속에 서 친구들과 뛰어 놀고, 후에 교사가 되어 양부모를 잘 모신다는 얘기다. 또 이런 사람이다.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미하엘 엔데(1929~1995)가 쓴 ‘모모’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을 그리고 있다. 시간은행 영업사원(회색신사)들이 다니면서 시간을 저축하라고 사람들을 유인한다. 바쁘게 시간을 쪼개 사는 것이 현대생활임을 홍보하고 다닌다. 이때 일곱 살짜리 ‘모모’가 갑자기 회색신사들의 영업을 방해한다. 어떻게 했을까? 느리게 살라고, 여유 있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 동네사람들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뿐만 아니라 유년의 상상력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가끔은 매튜 배리(1860~1937)가 쓴 ‘피터 팬과 웬디’를 깊게 읽는 사람이 다. 이 작품은 장난 끼 가득한 악동인 피터 팬과 동생들을 잘 돌보는 소녀 웬디를 통해 소년소녀의 유년을 그리고 있다. 유년의 세상은 네버랜드다. 유년은 상상력이 살아있다. 이를 잃은 자가 후크 선장이다. 우리 마음속 후크 선장을 몰아내는 노력을 할 것을 권한다.


요약하면,

우리경제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소수의 지니어스형 기업가가 아닌 기업가적 정신인 티모스가 살아있는 인재상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쓴 것이다. 새로운 인재상은 브릴리언트형 인재다. 스스로 자신을 빛나게 하는 인재다. 이들은 당당하고 시간의 미학을 생각하고 유년의 상상력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노력을 삶의 재신비화(re-mystification)라고 한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개념이 만든다고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말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 새로운 인재상을 제안한다.

* 출처 : 제이캠퍼스(J Commentary 2024. 9. 20 2024년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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