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도 닮지 않았으며 두 민족보다 훨씬 잘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한국인은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하다. 한국인들은 스코틀랜드식으로 말해 ‘말귀를 알아듣는 총명함’을 타고났다. 한국인을 가르친 외국인 교사들은 그들이 능숙하고 기민한 인지능력과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고, 중국인과 일본인보다 훨씬 좋은 억양으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증언한다.”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루시 버드가 1898년 펴낸 책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에서 한국인을 처음 본 인상과 한국인의 특성을 묘사한 대목이다.
1668년 ‘하멜 표류기’가 나온 이후 1874년 클로드 샤를 달레의 ‘조선교회사’, 1882년 윌리엄 그리피스의 ‘은둔국 코리아’, 1885년 퍼시벌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에른스트 오페르트의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 등이 우리나라를 서양에 알렸다. 이들 책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개인적인 목적이나 특정한 관점이 개입됐다는 한계를 갖는다. 한국에 와보지도 않은 이가 쓴 책도 있다.
비숍은 동시대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 시각을 벗어나진 못했으나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자 세계 각지를 샅샅이 누빈 여행가답게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숍은 1831년 영국 요크셔에서 성공회 신부의 딸로 태어났다. 23세에 미국 각지를 둘러본 뒤 ‘미국의 영국 여인’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어 캐나다, 호주, 하와이, 일본,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티베트,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모로코 등지를 방문하고 ‘샌드위치섬(하와이)에서의 6개월’, ‘로키산맥의 어느 여인’, ‘알려지지 않은 일본’, ‘황금의 체르소니즈와 그곳에 이르는 길’, ‘페르시아와 쿠르디스탄 여행’,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 등의 여행기를 썼다.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19세기 영국은 중상류층 여인이 혼자 외출하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어서 비숍은 여행을 꿈꾸는 여성들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그의 여행기는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조선을 처음 방문한 것은 1894년이었다. 경복궁에 들어가 고종과 민비(명성황후)를 만나고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도 목격했다. 서울 서대문 밖 무악재의 전봉준 처형 장소를 확인하기도 했다. 4차례에 걸쳐 한국을 찾았고 1년가량 머물며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했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당시 조선의 자연, 풍물, 종교, 생활 등을 상세히 소개했으며 인구, 외국인 거주 현황, 군인 수, 재정, 외국상품 수입액 등의 통계도 담았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의 전말을 꼼꼼히 기록해 국제적인 반일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책에는 불결한 환경, 열악한 도로 사정, 빈곤, 게으름, 관료들의 부패 등 조선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시베리아 한인촌의 근면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털어놓았다.
비숍은 1881년 의사 존 비숍과 결혼했으나 5년 만에 남편이 병사했다. 워낙 늦게 결혼한 데다 남편과 함께 지낸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아 자식은 보지 못했다. 인도에 남편의 유지를 기리는 존 비숍 기념병원을 세웠다. 1904년 중국 답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10월 7일 눈을 감았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9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영문 초판본을 선물했다. 이 책을 한국과 영국 우호의 상징물로 여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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