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일가의 롤모델이 된 언더우드

언더우드는 장로회 모교회인 새문안교회와 연세대의 뿌리인 언더우드학당을 세웠다. 후손들도 대대로 한국에 거주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이주민 일가의 롤모델로 꼽힌다.

이희용 승인 2024.07.23 10:50 의견 0
언더우드 가문의 3대, 4대, 5대 후손들이 2012년 6월 서울 신촌의 연세대를 방문해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세대 제공]


부활절이던 1885년 4월 5일, 일본 나가사키를 떠나 제물포항에 들어온 상선에서 두 미국 청년이 내렸다. 미국의 북장로회가 파견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元杜尤)와 미국 감리회 소속의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였다.

한 달 뒤에는 감리회 선교사 윌리엄 스크랜턴도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과 함께 입국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를 열고 근대적 교육기관을 세워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새문안교회, 정동제일교회, 아현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뿌리이고 언더우드학당, 배재학당, 이화학당은 연세대, 배재대, 이화여대로 발전했다.

출발은 언더우드가 빨랐다. 미혼인 언더우드는 방한 이틀 뒤 서울에 입성했고,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온 아펜젤러는 갑신정변으로 서울의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5월 3일 다시 스크랜턴 모자와 함께 입항했다.

언더우드는 호러스 뉴턴 알렌이 서울 재동에 세운 광혜원(제중원)에서 진료를 돕다가 정동의 가옥 한 채를 빌려 고아들을 가르쳤다. 이듬해 5월 11일 언더우드학당(구세학당)을 개교했고 1905년 경신학교로 개명했다.

언더우드 타자기를 발명한 친형 존 언더우드의 자금 지원을 받아 1915년에 설립한 조선기독대는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연희대가 됐다. 오늘날 연세대는 1957년 연희대와 세브란스의과대가 합쳐져 탄생한 것이다.

교회를 세운 것도 언더우드가 먼저였다. 1886년 7월 11일 자신의 두 번째 조선어 선생인 노춘경에게 첫 세례를 준 데 이어 1887년 9월 27일 정동의 자기 집 사랑방에서 14명의 교인과 함께 첫 예배를 올렸다. 한국장로회와 새문안교회는 이날을 시발점으로 삼는다.

언더우드는 한국어소사전과 찬송가 등을 펴냈고 아펜젤러, 스크랜턴과 함께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해 한글 성경을 보급했다. 이 모임에서 '여호와'를 '상제'로 번역할지 '하나님'으로 옮길지, 'eye of needle'을 '바늘귀'로 할지 '바늘눈'으로 쓸지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당시 조선에 없었던 '빵'은 '떡'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언더우드는 서울기독교청년회의 전신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설립에도 앞장섰다 1903년 초대 회장을 맡아 청년운동과 시민운동의 불씨를 지피고 야구·농구 등 서양 근대 스포츠를 보급했다.

1889년에는 명성황후의 시의로 일하던 제중원의 여의사 릴리어스 호턴과 결혼해 외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를 낳았다. 언더우드는 건강이 악화해 1916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0월 12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뉴저지 교회묘지에 묻혔다가 유족 뜻에 따라 1999년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로 이장했다.

언더우드 후손들도 대대로 한국에 거주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이주민 일가의 롤모델로 꼽힌다. 원한경은 3·1운동 때 제암리교회 학살사건 등을 세계 교회와 언론에 알려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 아들 원일한과 투옥됐다가 1942년 강제 추방됐다.

원한경은 광복 후 미국 육군성 통역요원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으나 부인 와그너가 좌익 청년들에게 살해되는 아픔을 겪었다. 6·25가 터지자 민간 고문단으로 활약하다가 1951년 2월 부산에서 숨졌다.

장남 원일한은 1947년부터 연희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6·25가 터지자 미국 해군에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고 유엔군 정전협상 수석통역장교를 맡았다. 3남 원재한과 4남 원득한도 각각 미군 군목과 통역요원으로 참전했다.

언더우드의 증손자 원한광은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4년 11월 한국을 떠났다. 저서 '퍼스트 무버'로 잘 알려진 동생 원한석은 한국에서 경영컨설턴트(IRC컨설팅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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