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반석 세운 모방 신부

선교 목적으로 입국한 최초의 서양인 신부 모방은 김대건과 최양업을 발탁해 마카오로 유학 보냄으로써 우리나라 천주교회 반석을 세웠다.

이희용 승인 2024.06.04 08:00 | 최종 수정 2024.06.04 09:26 의견 0
경기도 하남시 구산성지성당 외벽에 설치된 모방 신부의 부조 흉상.
구산성지는 모방 신부가 한때 은거했던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처형되고 수많은 천주교인이 참혹하게 죽어갔다. 체포를 면한 교인들도 깊은 산속이나 오지로 숨어들었다. 이제 막 싹을 틔우려는 신앙의 씨앗이 짓밟히는 암흑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는 천주교가 지식인 중심에서 상민과 천민들에게 확산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자생적인 조직을 만든 ‘기적의 땅’ 조선을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1831년 9월 9일 교황청은 북경교구에서 조선교구를 독립시키기로 하고 태국과 싱가포르에서 활동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했다.

마카오에 있던 그는 중국 대륙을 종단해 만주까지 왔다가 국경 경비가 삼엄해 때를 기다리던 중 1835년 10월 20일 병사했다. 그의 유해는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1931년 서울 용산성당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브뤼기에르 주교와 함께 조선 파견 명령을 받고 만주까지 따라온 신부가 피에르 모방이었다. 그는 1836년 1월 12일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입국했다. 교황청이 보낸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였다.

모방은 1803년 프랑스 바시에서 태어났다. 사제 서품 후 파리외방전교회에 들어가 중국 사천교구 선교사로 임명됐으나 브뤼기에르 주교를 만나 조선 선교사를 자원했다. 정약종의 아들이자 정약용의 조카인 정하상의 안내로 서울 뒷골(중구 주교동)에 자리잡고 전도에 나서 신유박해 직전 1만 명에서 6천 명으로 줄어든 천주교 신자를 다시 9천 명으로 늘렸다.

그는 천주교 교세를 지속적으로 넓히려면 조선인 사제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후보를 물색했다. 선발 기준은 때 묻지 않은 소년일 것, 천주교 집안일 것, 신앙심이 깊고 본인은 물론 가족도 신부가 되기를 바랄 것, 건강하고 근면할 것 4가지였다.

이에 따라 뽑힌 세 소년이 각각 충남 당진·청양·홍성 출신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였다. 최방제는 1820년생, 나머지 둘은 1821년생 동갑내기였다. 최양업은 최방제와 4촌 간이었고, 그의 외조부가 김대건 할머니와 친남매여서 김대건과는 6촌 간이었다.

1836년 2월과 3월 최양업과 최방제가 차례로 모방의 은신처에 들어왔고 김대건은 7월에 합류했다. 모방은 이들에게 천주교 교리와 라틴어를 가르쳐 그해 12월 유학을 보냈다. 이들은 압록강을 건넌 뒤 중국을 도보로 종단해 이듬해 6월 7일 파리외방전교회가 마카오에 임시로 세운 조선신학교에 입학했다.

최방제는 5개월 만에 열병을 앓다가 숨졌으나 김대건과 최양업은 1845년과 1849년 조선인 제1호와 제2호 신부로 서품됐다. 김대건은 1846년 붙잡혀 순교했다. 최양업은 12년간 조선 전역을 누비며 선교와 사목과 저술 등에 힘쓰다가 1861년 과로로 순직했다. 김대건과 최양업은 각각 ‘피의 순교자’와 ‘땀의 순교자’로 불리며 한국 천주교회의 반석이 됐다.

이들이 유학을 떠날 즈음 자크 샤스탕 신부가 모방에 이어 두 번째 서양인 선교사로 입국했다. 1836년 4월 26일 2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된 로랑 조제프 마리위스 앵베르도 이듬해 5월 4일 들어와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주교가 됐다.

앵베르 주교는 1839년 8월 김여상의 밀고로 체포됐다. 앵베르의 권유로 모방과 샤스탕 신부도 자수해 서울 용산의 새남터에서 함께 참수됐다. 이들의 유해는 훗날 서강대가 들어선 서울 마포구 노고산에 묻혔다가 4년 뒤 관악산 옆 삼성산을 거쳐 1901년 서울 명동대성당 지하로 이장됐다. 1984년 3명 모두 성인품에 올랐다.

18~19세기 조선에서는 천주교가 단지 또 하나의 새로운 종교에 머물지 않았다. 조선은 천주교 신부란 창을 통해 서양과 만났고, 서양은 이들의 눈으로 조선을 바라보았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의 한반도가 서양 열강이 주름잡던 세계 질서에 편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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