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조업이 가야할 방향 …'그린 대전환'

하노버 박람회가 주는 교훈

주영섭(서울대학교 특임교수) 승인 2024.06.03 09:55 | 최종 수정 2024.06.03 09:56 의견 0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우리 산업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세계 최대 산업 기술 전시회다. 기술패권 시대에 접어들며 매년 미국 CES(소비자전자쇼)와 함께 세계 양대 기술 전시회인 하노버 산업박람회에 세계인의 관심이 몰린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수출의 대부분을 반도체, 자동차, 철강·화학, 선박, 기계 등 제조업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 기술 트렌드를 보여주는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우리나라에 특히 중요한 기술 전시회라 할 수 있다. 한 달 전 개최된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도 미국 CES처럼 과거 팬데믹 이전의 열기를 거의 되찾으며 ‘산업 대전환, 지속가능한 산업의 활성화’를 슬로건으로 산업 기술의 주요 트렌드를 제시했다. 미국 CES와 같은 맥락에서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도 ‘지속가능성’과 ‘디지털화’가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부각되었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탄소중립 제조, 에너지 전환, 수소, 디지털화 측면에서 AI, 데이터 및 매뉴팩처링-X가 미래 트렌드로 제시되었다.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우리 제조업에 주는 핵심 방향은 AI와 데이터 기반 ‘디지털화’ 및 ‘디지털·AI 대전환’과 지속가능성 및 탄소중립 기반 ‘그린 대전환’으로 요약된다. 지난달 칼럼에서 AI 및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의 ‘디지털화’ 관련 트렌드에 대한 개요와 시사점을 정리하였고 이번에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제조업의 ‘지속가능성’ 다시 말해 ‘그린 대전환’ 관련 트렌드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최근 초변화 대전환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지속가능성은 크게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으로 나뉜다.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소비자 기술(B2C) 중심의 미국 CES와 달리 산업 기술(B2B) 중심이어서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환경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탄소 배출과 흡수를 상쇄시켜 순배출을 제로화하는 ‘넷제로(Net Zero)’라 불리는 탄소중립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제조업의 특성 상 탄소중립은 제조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관문이다. 탄소중립을 실현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근간인 수출이 어려워져 국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즉, 탄소중립 제조는 우리나라의 미래 명운이 달려있는 국가적 최우선 과제임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 EU, 일본 등 주요국과 같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2021년 탄소중립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2018년 탄소배출량 대비 최소 86%, 최대 89%를 감축해야 한다. 아울러 중간 목표로 2030년까지 40%를 감축하겠다는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21년 UN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했다.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40% 감축 NDC 모두 국가적으로 획기적 비상조치가 없는 한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목표다. 이는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최고의 탄소 감축 기술은 물론 자원 순환, 비즈니스 모델 혁신, 산업구조 혁신 등 광범위한 혁신 노력이 필수적이다. 하노버 산업박람회에 제시된 관련 기술 및 전략 혁신을 세밀히 분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 총 탄소배출량 510억톤(t) 중 제조 분야가 31%를 차지하여 최대 배출 분야이고 그 다음이 발전 분야로 27%이다. 우리나라 탄소배출량 7억3000만t의 구성을 보면 제조 분야가 36%로 발전 분야 37%와 거의 비슷하다. 다시 말하면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36%의 탄소배출량 비중을 최대한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것이 관건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감축 부담이 월등히 크다. 상대적으로 탄소중립 제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제시한 탄소중립 제조 트렌드를 정리해보면 먼저 전동화가 크게 부각되었다.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유압, 공압, 열에너지 등을 최대한 전기 모터, 전기로 등 전동화하는 추세다. 독일의 유리 제조업체인 쇼트는 에너지 집약적인 대표적 탄소배출 기업인데 기존의 화석연료 기반의 용광로를 전기로로 대체하여 에너지 절약과 탄소중립 제조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의 화학 기업인 바스프도 재생 에너지 기반 전기로를 화학 공정에 적용하여 탄소배출량을 90% 감축하는 기술을 사우디아라비아 화학기업인 SABIC, 독일 화학기업 린데와 협력 개발하고 타사에 라이선스 판매를 예정하고 있다. 전동화는 결국 무탄소 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어 발전 분야 탄소중립과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전동화에 우선 주력하고 발전 분야의 탄소중립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사용 전력 100%를 재생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100은 우리나라 에너지 환경 상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원전을 포함하는 CF100이 우리 현실에 적합한 조건이어서 유사한 상황의 제조 국가들과 협력하여 게임 규칙을 바꾸는 조직적이고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로서는 국가적 중장기 과제다.

둘째로, 에너지 절감 및 공정 효율성 제고에 많은 관심이 몰렸다. 대만의 델타 일렉트로닉스는 미국 엔비디아의 옴니버스TM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공장 디지털 트윈 서비스로 에너지 절감 및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솔루션을 공개하였다. 독일 지멘스에서 분사한 이노모틱스는 경쟁사 대비 40% 이상 가벼운 경량화 모터, 실시간 데이터 기반 공정 관리 및 설비 유지보수 솔루션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셋째로, 순환 경제 기술이 지속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순환 경제는 제품을 사용 후 폐기하는 기존 선형경제 구조에서 탈피하여 설계 단계부터 폐기물 및 오염 방지, 제품 및 재료 사용 유지, 자연 시스템 재생 등을 고려하여 자원을 지속적으로 순환시키는 경제 체제다. 스웨덴의 배터리 기업인 노스볼트는 배터리급 순도의 리튬, 니켈, 망간, 코발트 등 배터리 주요 소재를 95% 이상 회수 가능한 고효율 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제시했다. 독일의 솔라 머티리얼스도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태양광 패널에서 알루미늄, 은, 구리, 실리콘, 고품질 유리 등 주요 소재 98% 재활용 가능하고 기존 회수 방법 대비 탄소배출량을 80% 감축한 기술을 발표했다. 독일의 칼스루에 공과대학(KIT)은 건설 폐기물 콘크리트를 저탄소 콘크리트로 재생산하는 순환경제 콘크리트 기술을 제시하여 탄소 배출이 많은 건설 분야의 탄소중립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 수소 기술과 수소 경제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수소 생산을 통한 수소 연료전지 발전과 에너지 저장 수단으로서의 수소 활용이 주요 관심사다. 독일의 SFC Energy는 PEM 타입 고성능 소형·경량 수소 연료전지를 발표하여 병원, IT 백업, 건설 현장 등에서 긴급 전력 공급 장치로 주목을 받았다.

다섯째로, 디지털화가 지속가능성 및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한 수단임이 강조되었다. 디지털 트윈 기반 시뮬레이션, 실시간 모니터링 및 최적화, AI 기반 장비 예지 보전 등 디지털화를 통하여 에너지 절감 및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방안이 다수 제시되었다. 프랑스의 다쏘시스템, 미국 알테어, 미국 아마존 웹서비스(AWS) 등이 대표적 사례다.

여섯째로, 공정 기술의 혁신을 통한 탄소중립이다. 독일의 철강회사인 잘츠기터는 단위 분야로 탄소배출이 가장 큰 분야인 철강 생산에 있어 혁신적 공정 기술인 수소환원 제철 기술로 탄소중립에 기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엘레판텍은 적층 방식의 금속 잉크젯 프린팅 기술로 기존 에칭 기반 PCB 제조 공정의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했다.

탄소중립 제조는 우리나라의 숙명적 당면 과제인 동시에 성공 시 세계 제조업을 석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제시한 다양한 기술 혁신을 참조하여 탄소중립 제조를 실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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