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 박람회가 주는 교훈…"혁신하라 KOREA"

AI 대전환을 정점으로 한 디지털화 및 디지털 대전환에 우리 제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주영섭(서울대학교 특임교수) 승인 2024.05.14 09:00 의견 0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세계 최대 산업 기술 전시회인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지난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5일 동안 독일 하노버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과학기술이 기업은 물론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기술패권 시대에 접어들며 기술의 미래 트렌드를 보여주는 세계적 기술 전시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술 분야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 기술(B2B)과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 기술(B2B)로 나눈다면, 소비자 기술 분야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소비자전자쇼)가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이고, 산업 기술 분야에서는 하노버 메세라고 불리는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최대로 세계 기업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기술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기술이 중요해질수록 이들 세계 양대 기술 전시회에서 제시하는 미래 기술 트렌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어 우리 기업은 물론 정부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1947년 최초로 개최된 이후 올해로 77회째를 맞은 하노버 산업박람회에는 60개 국가에서 4000여 개 기업이 전시업체로 참여하여 8000종 이상의 제품 및 솔루션을 선보이고 13만명 이상이 참관하였다. 올해 초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와 거의 비슷한 규모다. 아직 코로나 팬데믹 직전의 6500개 전시업체와 22만명의 참관객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나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를 감안하면 많이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가 업체의 면모는 화려하다. 지멘스, SAP,보쉬, 슈나이더 일렉트릭 등 굴지의 유럽 기업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도 참여하여 열띤 첨단 산업기술 경쟁을 펼쳤다. 과거에는 대기업 중심이었으나 올해는 300여 개의 기술 스타트업이 전시에 참여하여 새로운 혁신 기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LS일렉트릭, 한화솔루션, SK C&C 등 대기업을 포함하여 약 70개사가 참여했다. 미국 CES에 우리 대·중소 및 스타트업 기업 784개가 참여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참여도가 많이 낮은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세계 제조 산업에서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위상을 고려하면 참여 확대가 시급하다.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와 지난 1월 초 열린 미국 CES를 심층 분석해보면 중요한 공통점이자 이 시대를 대변하는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디지털 혁명,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글로벌 경제 침체, 미·중 갈등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신냉전 체제 등 초변화 대전환의 영향으로 환경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디지털화가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인류와 사회가 미증유의 초변화 대전환에 따라 환경과 사회,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CES가 핵심 슬로건으로 ‘모두를 위한 인류 안보’를 내세운 것이나 산업박람회가 ‘산업 대전환, 지속 가능한 산업의 활성화’를 표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속 가능성과 디지털화는 산업 기술을 다루는 하노버 산업박람회와 소비자 기술을 다루는 CES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트렌드로 작금의 대전환 시대의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기업과 정부가 세계 양대 전시회에서 미래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의 맥락, 다시 말해 최근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기술의 목적’으로서 지속 가능성과 디지털화라는 두 가지 시대정신을 기업 및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크게 보면 지속 가능성은 인류와 사회의 목적이 되고, 디지털화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즉, 디지털 및 AI 대전환을 통해 환경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하고 사회 비전을 구현하는 것이 바로 모든 기업 및 국가의 목적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경영 규범으로 자리 잡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도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한다는 면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1일 저녁 개막식 때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개회사는 우리에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는 독일 및 EU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에너지 대전환과 산업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역설하였다. 최근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는 면에서 동병상련인 우리나라에도 공히 적용되는 방향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제품의 지속적 개선과 함께 미래 신기술 개발, 지속 가능하고 경제적인 에너지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력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AI 기반으로 한 단순 작업의 자동화 및 고부가가치 일자리의 확대를 통해 생산성의 획기적 제고가 필요하다고 피력하였다. 아울러 규제 혁신 등 관료주의 타파는 비용 없이도 지대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보다 단순하고 빠른 실행’을 강조하고 이를 통한 2023년 한 해 동안 경제적 효과만도 30억 유로(약 4조4000억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제시한 기술 트렌드는 AI, 매뉴맥처링-X, 탄소중립 생산, 산업용 에너지, 수소 및 연료전지 등 다섯 가지 분야로 정리된다. 즉, 지속 가능한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AI와 산업 데이터 등 디지털화, 수소 및 에너지, 탄소중립 생산 등 지속 가능 기술 및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요약된다. 그중에서도 AI는 디지털화의 핵심으로 올해 CES에 이어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도 최고의 화두였다. 연결(Connectivity), 데이터 및 AI로 구성되어 있는 디지털화는 결국 AI 대전환으로 귀결된다. AI의 강점인 ‘분류’ 기능과 ‘예측’ 기능에 이어 ‘생성’ 기능이 산업 AI의 주류로 부상했다. ‘분류형 AI’는 카메라로 양품·불량품을 자동 분류하는 비전 검사 등 품질관리에 많이 사용되고 있고, ‘예측형 AI’는 기계장비의 작업 데이터 모니터링을 통해 고장을 예측하고 사전에 정비·보수하는 예지보전, 판매 예측, 공급망 결품 예측 등이 주요 활용 사례다. ‘생성형 AI’ 분야에서는 자연어 대화 및 멀티모달 기반 생성형 AI 기능을 통해 산업 프로세스 전반에서 업무 생산성 및 효율의 획기적 향상은 물론 로봇, PLC 등 기계장비의 음성 제어 및 소프트웨어 코딩, 제품 및 공정 설계, 디지털 트윈 기반 시뮬레이션 및 최적화, 산업 메타버스 구현 등 다양한 생성 기능의 활용 사례가 제시되었다. AI 도입은 산업 경쟁력 제고와 지속 가능성 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기업 및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산업 디지털 및 AI 대전환을 위한 국가적 로드맵 구축과 실행이 시급하다.

다음으로 매뉴팩처링-X 등 AI 대전환에 필수적인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위한 독일 및 EU 차원의 협력과 노력이 주목해야 할 대상이다. 데이터 없는 AI는 무용지물이다. 매뉴팩처링-X는 제조 데이터 공유 생태계 구축을 위해 독일이 주도하는 EU 차원의 이니셔티브다. 제조 데이터의 생성, 수집, 가공, 분석, 폐기 등 전 주기 관리를 위한 데이터 구조 및 모델링, 표준화, 활용 사례(Use Case), 거래 체계를 다루고 있다. EU가 2019년부터 추진해온 데이터 생태계 구축 사업인 Gaia-X의 일환으로 시작했다가 제조 산업에 특화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먼저 독일 및 유럽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Catena-X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올해 항공, 화학 산업 등 타 산업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매뉴팩처링-X는 민간 주도로 제조 데이터 생태계 차원의 데이터 협력을 통하여 탄소 배출량 관리 및 순환경제, 신뢰할 수 있는 추적성 관리 등 주요 활용 사례(Use Case)를 중심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정부 주도로 데이터 생태계 구축이 추진되고 있는 우리나라도 민간 주도로 전환을 서둘러야 할 때다.

AI 대전환을 정점으로 한 디지털화 및 디지털 대전환에 우리 제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혁신하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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