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_4차 산업혁명,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

박병원 승인 2024.01.05 09:16 | 최종 수정 2024.01.15 18:37 의견 0


미국의 역사학자 멜빈 크란츠버그(Melvin Kranzberg)의 기술법칙에 따르면 기술은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며 여러 역사적 요소 중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기술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중립적인 것도 아니다. 크란츠버그는 기술이 관련된 많은 의사결정은 오히려 비 기술적 요소에 더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인공지능, 빅데이터, 센서, 로봇 등의 기술발전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로 직접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간 자체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 어떤 고려도 없이 그저 인간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 대한 분석에만 머물러 있다.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를 거론하면서도 스마트 피플(smart people)은 예상하지 않는 식이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더욱이 그 변화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급격한 변화일 수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뉜다. 첫째, 인공지능에서 새로운 산업의 기회와 동시에 새로운 사회 구성을 기대하는 ‘산업적 담론(industrial visions)’이다. 둘째, 인공지능의 빼어난 역량이 발휘되는 환경에서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독특한 영역 계발을 모색해보려는 ‘생존기술의 담론(personal development techniques)’이다. 셋째, 지능과 물리적 힘의 차원에서 인간을 대체 또는 능가하는 기계 우위 시대의 도래를 예상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우울한 미래사회를 그리는 ‘비관적 담론(dystopian scenarios)’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시장자본 증식을 위한 기술발전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결국 기술발전을 가능케 할 창의력도 진작시킬 수 없고 삶의 질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다시금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가 독일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이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에서 앞서가는 이유는 인간의 자유, 창의성, 삶의 질이 사회구성원들의 평등한 참여와 협력을 통해 상호 증진적으로 발휘되어서다. 따라서 우리가 독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설비 제작 기술이 아니라 그런 기술이 창안되는 사회적 바탕, 즉 인본적 토양인 것이다. 이를 배우지 못한다면 비록 4차 산업혁명의 외피는 카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4차 산업혁명의 본질적·심층적 동력과 생명력까지는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가상적 인간은 현실의 인간과 커뮤니케이션할 때 ‘정직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을 기분 좋게’ 하도록 프로그램화되는 존재다. 현실의 인간은 가상적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분명 더 높은 자긍심을 얻게 될 것이다. 가상적 인간은 자신을 구매한 이에게 절대로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며 혼도 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경험은 현실의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현실에, 그리고 삶에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 현실의 인간은 자신이 인정받고 지지받는 가상적 인간과의 관계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현실의 인간관계는 점차 흔들릴 위험성이 높다.

실수의 규모가 시스템의 완성도로 직결되는 보안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이 공격이나 수비 중 어떤 역할을 담당하든 간에 인간보다는 뛰어난 성과를 보일 것이다. 인간의 실수가 가져오는 취약점을 공격과 수비 중 어느 쪽이 먼저 발견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는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시스템의 취약점을 보다 더 빠르게 찾아낼 가능성이 높고, 드러난 취약점을 보완하거나 악용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개입할 기회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추동하는 다양한 신기술, 그중에서도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robotics) 기술의 규범적 영향과 그 대응방식에 대해 주요 국가들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며 고민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규범적 대응은 관련 기술의 개발 및 발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요 국가들은 사회적 편익과 혁신 증대에 기여하는 신기술의 개발 및 서비스화에 주력하면서, 이러한 기술들이 유발할 수 있는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규범적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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