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베니스: 광장에서 다가오는 풍경의 영혼
피아짜!
도시의 광장을 일컫는 이태리 말이다. 광장, 넓은 면적의 공간.그러나 이탈리아 도시에서 우리를 환대하는 이 광장들은 단순히 넓은 공간이 아니다. 대체 광장이 넓은 공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광장을 우리 여행의 길잡이 풍경 현상학을 통해 잠시 사색해 보도록 하자.
광장은 도시의 모든 만남이 실질적으로 자리 잡는 장소이다. 가로를 따라 전개되는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을 거쳐오는 보행자는 도시의 중심인 광장으로 흘러 들어 온다. 이곳에서 풍경들은 한데 모이고, 다시 가로를 통해 퍼져 나간다. 마찬가지로 보행자도 가로를 따라 진행한 도시의 다양한 풍경의 탐색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다양함 속의 이 거주 공간에 같이 속해 있음을 만끽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따라서 광장은 가로보다 강력한 통일성과 사람들의 공속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가로를 따라 움직이던 인간은 광장에서 그 발걸음을 멈추면서 머무름과 휴식 나아가 만남의 내용에 대해 사유한다. 따라서 광장에서는 가로를 따라 흩어져 있는 것들이 복합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이미지로 응축된다. 이렇게 하여 도시 거주자들의 관계가 공동체로 각성된다.
이제 이러한 광장의 의미로부터 가로를 되돌아보면 가로는 단순히 광장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아니라 광장과 같은 초점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고 가로로서 열려진다. 예컨대, 유럽의 역사도시에서 가로는 도시 내부공간의 초점으로 모여들고 흘러나가는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이렇게 도시의 초점과 관계를 갖고 있는 가로들은 단순히 사람과 물건의 운송로가 아니다. 가로들은 이러한 초점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그 초점으로부터 퍼져 나온 공동체의 형성 의미가 시적 운율처럼 변주되며 전체 거주지로 스며드는 길로 나타난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도시의 내부로부터 길을 타고 퍼져나가는 의미들은 도시의 경계를 한계로 외부 풍경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도시의 형태를 결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도시의 길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 풍경의 의미들이 어떻게 도시의 관문을 넘어 내부로 전이되는 지를 보여준다. 도시의 미로는 내부 중심으로부터 퍼져나가는 의미들과 외부로부터 밀려 들어오는 의미들이 어떻게 화음을 이루는지 예시하는 것 같다.
베네치아:
베네치아! 아주 오래전 거의 지금 부터 거의 70년 전 쯤 베니치아를 여행하는 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있었다.
여정, 원어로는 Summer Time in Venice 인 이 영화. 또 만도린과 아코디온 연주가 은은히 흐면서 Jerry Vale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I dream of the summertime, Of Venice and the summer time. I see the cafes, the sunlit days With you, my love.이라고 읇조리는 OST를 잊을 수 없는 영화. 이 영화에서 베니스는 왜 꿈과 추억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니체도 고백했다. "나는 행복과 남쪽을 공포의 전율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이때 니체에게 전율토록 행복을 선사한 남쪽이 바로 베니스였다.
뿐만 아니다. 베니스는 18세기 19세기 영국의 귀족들과 젠틀맨들의 자제들이 교양인으로 지위를 얻기 위해 떠나는 그랜드 투어에서 반드시 들려야 할 순례지이다.
이런 베니스를 슐츠는 미로와 도시의 중심으로서의 광장이 절묘하게 시학적 역할을 이루어내는 도시로 그 풍경의 영혼을 발견한다. 특히 베니스의 성마르코 광장은 한편으로 오밀조밀함의 극치를 과시하고 있는 베니스시의 미로와 다른 한편으로 남쪽의 낙천적 태양을 만나 보석처럼 빛나며 광활하게 트여있는 바다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하여 성마르코 광장에서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풍경의 의미가 조우하면서 서로에게 전이 되는 가운데 이렇게 어우러진 의미들은 광장의 다른 쪽 측면으로 미로를 타고 베니스 시로 흘러드는 것이다.
이렇게 흘러드는 풍경의 의미는 베니스의 수로에서 시적 변주의 절정에 이른다.
바다와 미로가 함께 만들어내는 베니스의 수로는 흘러드는 의미들을 응결시키며 유일하고 독특한 사물을 탄생시킨다. 오직 베니스에만 있는 사물, 결코 다른 곳에는 있을 수 없는 것. 그래서 마카오나 라스베이가스 처럼 다른 곳에 있으면 그 존재가 일그러져 가짜가 되어버리는 사물. 그것은 바로 베니스를 바다도 땅도 아닌 그래서 바로 바다이면서 동시에 땅인 풍경으로 출현시키는 수로, 그 수로의 수면 위를 흑진주처럼 떠다니는 곤돌라이다.
때문에 베니스의 수로는 그냥 수로가 아니며 그 위를 떠다니는 곤돌라는 그냥 배가 아니다. 수로가 베니스란 시의 시구라면, 곤돌라는 시어이다. 곤돌라는 시어처럼 반짝이며 수로라는 시구를 타고 시구들을 이어가며 베니스란 시를 읊어내는 것이다.
베니스의 풍경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과 신성함은 결국 곤돌라에서 만난다. 죽을 운명의 인간인 베니스 사람들은 삶의 끝에 도달하여 죽음이 오면 바로 곤돌라를 타고 죽을 운명의 인간을 넘어서 있는 신성한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시에나
이제 우리는 잠시 머무른 베니스를 뒤로하고 광장이 곧 그 도시의 영혼을 형성하고 있는 도시, 시에나로 떠난다.
도시의 중심부는 도시의 자연적 지세를 반영하는 지형학과 기하학이 결합하며 공간조직을 형성할 때 도시적이다. 그리고 이 결합이 화해를 이루며 화합을 구현할 때 도시의 중심부는 도시의 전체공간을 탁월한 방식으로 조직해낸다. 슐츠는 이러한 탁월한 공간조직의 가장 대표적 예로 이태리의 도시 시에나Siena를 든다. 여기서 잠시 시에나 광장에 머물러 보자.
유럽 다른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시에나라는 도시 공간은 광장으로 중심화되며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 광장은 어느 곳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공간 형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광장은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란 찬사를 받으며 시에나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시에나는 그 도시의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는 광장 피아자 델 캄포와 동일시될 정도로 광장을 통해 그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광장 때문에 시에나에 모인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도대체 이 광장의 독특한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시에나는 북으로는 피렌체, 남으로는 로마, 서쪽으로는 지중해로 향하는 세 개의 언덕에 조성된 도시이다. 도시의 중심은 당연히 이 세 개의 언덕이 만나는 곳이다. 따라서 만남으로서의 도시공간을 초첨화는 광장은 이곳에 조성되어야 했다. 그러나 세 개의 언덕이 만나는 풍경의 지형적 조건은 곡면과 비탈이 주를 이루고 있는 지세이다. 때문에 수평적 평면을 제공하는 데 인색하다. 그리고 이렇게 수평에 인색한 지형적 조건은 도시의 중심부를 광장으로 조성해내기에 불리하다. 물론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풍경의 지형적 조건을 무시하고 대지를 평탄화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시에나에서는 이러한 상투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이 선택되지 않았다. 오히려 풍경의 지형학적 난점은 상투적 공간 조직방식을 탈피하여 시에나의 공간을 여느 광장과는 다른 매력적 공간으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물론 이 반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200년이란 역사의 성숙과정을 거쳐 지금의 피아자 델 캄포의 형태로 탄생하며 시에나의 공간을 조직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광장에 시에나 풍경의 지세적 조건인 곡면의 비탈을 존중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 곡면의 비탈과 어울리며 초점으로서의 의미를 상징화하는 기하학적 패턴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패턴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정방형이나 원형일까? 다른 도시에처럼 광장의 공간을 정방형이나 원형으로 조직한다면 곡면비탈에서는 오히려 그 도형의 형태가 왜곡되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완벽성과 보편성이라는 기하학적 도형의 상징적 효과를 훼손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시에나에서는 원이나 사각형 형태의 광장조성 대신 다른 기하학적 해결방식이 도입된다.
곡면의 비탈은 어느 한 곳으로 수렴되는 흐름의 공간성을 갖고 있다. 이를 선명하게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경사진 흐름에 기하학적으로 정확히 계산된 부채꼴 모양의 방사형체계를 새겨 넣어 그 흐름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에나의 피아자 델 캄포는 오목하게 휘어져 비탈진 지세가 8개의 방향을 따라 한 점으로 수렴되는 부채꼴 형태로 지어진다. 물론 이 8개의 선은 광장이 완성될 당시 시에나의 영향력이 있는 8개의 가문을 상징한다.
그리고 풍경의 지세가 수렴되는 지점에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시청사는 다시 수직으로 우뚝 선 만자Mansa라는 이름의 탑으로 어디서나 돋보이는데, 이러한 형태를 통해 하늘과 땅을 이어내며 시에나 공간의 흐름을 받아내고 있다.
그 결과 외부로는 로마, 피렌체, 지중해로 뻗어나가는 시에나의 공간적 구조는 내부로는 광장의 흐름에 매개되어 시청사로 집중된다. 동시에 거기서 만자 탑을 통해 하늘과 땅으로 이어짐으로써 보다 선명하게 실존적 공간의 구조를 구현하게 된다. 대지의 지형학과 추상적 기하학은 시에나 광장에서 이렇게 결합하여 화해를 이루며 실존적 공간을 탁월하게 성취하는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시에나 광장은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란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시에나 광장은 바닥이 빛나는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주변이 화려한 꽃으로 치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시에나 광장이 아름답다면, 그것이 우리의 미적 감수성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에나 광장이 하늘과 땅을 그 자체로는 아무 감동도 없는 무미건조한 물질로 환원시키며 오직 넓은 면적의 수용능력이라는 기능만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시에나 광장과 건물은 그곳 풍경에 고유한 대지의 지세를 보존하며, 또 대리석 대신 그 지역 대지가 선사한 고유한 흙을 구어 만든 벽돌로 지어져 있다. 따라서 시에나 광장은 찬란한 장식성보다는 짙은 토속성을 드러내며 풍화를 허용한다. 그리고 풍화된 벽돌 바닥과 건물들은 시에나 광장을 대지로 삭아 들어가는 귀향의 분위기로 채색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지가 그 투스카니 지방의 코발트 빛 하늘과 만나며 그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 찬란한 하늘이 대지의 지세가 배어나오는 사발모양의 토속적 광장에 담기듯 내려앉는다. 그럴 때면 시청건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광장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광장은 이제 캔버스가 되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하늘과 땅은 빛과 그림자의 윤무를 통해 스스로에게 붓질을 한다. 하늘과 땅은 시에나에서 인간이 지은 건축물로 중심화되어 서로 만나며, 이 만남의 과정은 광장에 스스로를 풍경화로 드러내는 포이에시스적 사건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에나 광장의 아름다움은 그곳에서 탁월하게 성취되는 실존적 공간조직에서 샘솟는다. 그것은 감수성을 자극하는 장식적 미학으로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존재론적․실존론적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거주를 갈망하는 인간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은다. 이에 응답하듯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은 그 광장에 행복하게 자리 잡으며 광장을 향유한다.
이제 우리는 이태리를 떠나 유럽에서 마지막 고귀한 여행의 목적지 남프랑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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